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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r Play 인터뷰] ‘미주알고주알’ 던지는 어미새? 9년만의 첫 칭찬에 만개한 ‘형바라기’,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솔저들 이석준·임철수

[Pair Play 인터뷰] ‘

입력 2017-01-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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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배우  이석준  임철수 인터뷰7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이석준(왼쪽)과 임철수.(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

 

“그때부터 멘토였어요.”

2008년 윤호진 연출의 연극 ‘39계단’에서 처음 만나 시작된 인연이 햇수로 벌써 9년째다. 연극 ‘벙커 트릴로지’에 함께 출연 중인 이석준에 대해 임철수는 그 긴 세월을 한결같이 멘토라고 칭했다. 이유도 간단하다.

“너무 멋있어요. 저 뿐 아니고 같이 살고 있는 박해수 형, (‘레드북’, ‘페스트’ 등의) 박은석, 셋 모두한테 멘토예요. 낯뜨겁지만 형이랑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굉장히 큰 의미예요. 집에 가면 만날 자랑해요. ‘난 형이랑 같이 공연한다~’ 그러면 엄청 부러워들 하죠.”

그저 멋있다는 이유로 멘토가 될 수 있을까 싶어 “뭐가 그렇게 멋있냐”고 물으니 “무대 위에서나 밖에서나”라는 대꾸가 돌아온다.

“딱히 할말 없지 너?”
쑥스럽게 웃는 이석준의 반문에 또 다시 “배우가 아니어도 그냥 멋있는 분”이라는 말이 돌아온다.  

 

뮤지컬배우 이석준 인터뷰6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이석준(.(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인간적으로나 배우로서나 너무 닮고 싶은 거죠. 형은 계속 바꾸시거든요. 매일 매일. 안정적으로 공연이 올라가고 나면 대부분은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커요. 그런데 형은 그걸 깨부수고 계속 왜라고 물어요. 그리곤 매일매일 연습하죠. 저는 잘 못해요. 두렵잖아요.”

그리곤 또 다시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지 “멋있다”고 해맑게도 웃는다. 오랜 ‘형바라기’ 임철수에 대해 이석준은 “철수, 우리 철수는 진짜 노력을 많이 하는 배우”라고 평했다.

“‘39계단’에서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예요. 한결같이 연습량이 어마무시하죠. 제가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편이에요. 뭐가 잘 안되면 아닌 것 같은데…식으로 은근히 지적을 많이 하는 편이죠. 사실 선배가 그러는 게 고맙기도 하지만 선뜻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아요. 그런데 철수는 그런 말을 던지면 본인화를 시켜서 가지고 와요. 다음날 바로 바뀌어 오니까 던져주는 맛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연습실 문을 열고 닫는 배우가 늘 임철수라고 덧붙이는 이석준의 말에 임철수는 “좋은 걸 던져주시니까 항상 잘 받아먹고 있다”고 웃는다.

“던져주는 걸 잘 받아먹는 걸 넘어서요. 철수는. 무대 위에서 잘하는 친구가 있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철수는 둘 다예요. 되게 살아 있어서 에너지가 넘치는 게 느껴져요. 잘 하고 싶다, 어떤 인물로 살아 있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요. 무대 위에서 철수는 끝내주죠.”

어미새처럼 던지는 이석준과 이를 “잘 받아먹는다”고 표현하지만 자신만의 것으로 진화시키는 의지와 열정을 가진 임철수는 그렇게 9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형이) 오늘 (인터뷰하면서) 부끄러운 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시작부터 하고 가네요.”


◇2주에 하나씩? 설마가 현실이 되는 고통
 

뮤지컬배우 임철수 인터뷰3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임철수.(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작품 자체가 어렵지는 않아요. 연습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게 문제였죠. 기승전결이 따로 있는 세 작품을 동시에 준비해야한다는 게 어려웠죠.”

‘벙커 트릴로지’는 전쟁 중 참호 속에서 벌어지는 3개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연극이다. 2015년 초연에 이어 2016년 성황리에 재연된 ‘카포네 트릴로지’와 궤를 같이 하는 트릴로지 시리즈 중 하나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아가멤논, 영국 켈트신화 속 아더왕의 전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를 바탕으로 한 ‘아가멤논’, ‘모르가나’, ‘맥베스’ 3편으로 꾸린 전쟁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이석준은 ‘아가멤논’의 알베르트, ‘모르가나’의 랜슬롯, ‘맥베스’의 벤을, 임철수는 연락병, 가웨인, 매튜를 연기한다.

“동시에 세 인물을 구축해야하는데 비슷해 보이면 또 안돼요. 인물의 격차를 두고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면서 작품마다 메타포(은유 혹은 암유)를 따로 심어야 했죠. 작품 3개를 2주에 하나씩 만들어가는 게 제일 고통스러웠어요.”

이석준의 증언(?)처럼 “이제 좀 될 만하면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연습기간은 그야 말로 전쟁과도 같았다. 연습시간이 끝나고 돌아가려는 후배들을 붙잡아 앉힌 이 역시 이석준이었다.

“제가 처음에 출연을 망설였던 이유도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였어요. 당시에 드라마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를 촬영 중이었거든요. 다행히 드라마 촬영이 빨리 끝나서 연습실에 함께 할 시간이 생겼어요. 이 공연을 하라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했죠. 그래서 부딪히고 실험도 많이 해봤어요.”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2주에 하나씩 작품을 완성하고 심화시키면서 ‘벙커 트릴로지’를 무대에 올렸다.


◇여운 짙은 이석준의 ‘아가멤논’, 애정 충만 임철수의 ‘모르가나’, 현시국의 반영 ‘맥베스’

뮤지컬배우  이석준  임철수 인터뷰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이석준(왼쪽)과 임철수.(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벙커 트릴로지’는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 같은 요즘 시국과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다. 특히 이석준이 지선 작가 작품 중 최고라고 극찬한 ‘맥베스’는 더욱 그렇다. 이에 대해 이석준은 “후반부 연설이나 권력에 대한 탐욕 등이 그렇다. 작가나 연출진에서 더 강화시켰고 실제 원작에서 주지 않은 걸 녹여낸 부분도 많다”고 설명했다.

“국민 전체가 전쟁이 난 것 같은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카포네 트릴로지’는 새로운 스타일을 즐기는 공연이었는데 ‘벙커 트릴로지’는 생각할 게 많다 보니 관객들도 튕겨 나가고 싶은 의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맥베스’에 대한 이석준의 말에 임철수는 “대사들을 곱씹어 보면 지금이 ‘벙커 트릴로지’ 속 1차 세계대전 때랑 다른 게 뭔가 싶어 답답하다”고 심정을 전한다.

“이런 공연을 하고 있다는 데 자부심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의미가 남달라요. 찝찝하기도 하고…. ‘아가멤논’도 그래요. 기다렸다는 크리스틴과 잠들게 해달라는 알베르트의 마지막 여운이 정말 짙죠.”

임철수가 말한 그 여운은 이석준이 알베르트를 만들기 위해 공을을 들인 결과물이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아가멤논’에 빈공간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며 “한 인간이 전쟁으로 피폐해져 가는 과정을 보여줘야 하는데 크리스틴(김지혜·정연)은 여성운동을 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모든 걸 내려놓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죽으면서 피폐해져 사람을 죽이는 과정까지가 명확하게 짜여져 있었다. 반면 알베르트는 과정을 점프해야하는 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뮤지컬배우 이석준 인터뷰3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이석준.(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영화라면 전쟁 장면이라도 보여주겠는데 맨바닥에 총을 쏘고 나는 전쟁광이다 해야 하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죠. 크리스틴과 행복했던 순간에는 ‘나는 행복해’ 하다가 참호 안에서는 ‘나는 심각해!’ 하는 게 자칫 가벼워 보일 것 같았거든요.”

같은 인물이지만 극과 극의 감정을 표현하며 크리스틴에게도 치명적인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까 이석준의 고민은 깊어졌었다. ‘아가멤논’의 알베르트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그 2주 동안 이석준은 극도로 예민해지기도 했단다. 늘 밝은 기운을 내뿜는 이석준에 “예민해지기도 하냐”고 묻자 임철수가 기다렸다는 듯 “엄청 예민해진다”고 대꾸한다.

“저도 할 게 많다 보니 계속 인상을 쓰고 있었나 봐요. 후배들이 뭘 물어보고 싶어도 다가오질 못하고 자기 연기 때문에 인상을 쓴다고 오해를 하기도 했더라고요.”

공을 들인 만큼 스스로가 느끼는 여운도 짙다. 한번 캐릭터에 빠지면 24시간 그 인물로 살아야 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이석준처럼 무대와 생활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배우도 있다.

“분리시키지 않으면 작품이 풍성해지질 않아요. 늪에 빠진다고 해야 하나…그것만 생각하다 보면 보지 못하는 것들이 생겨나거든요. 아무리 애를 써도 안풀리던 수학문제가 한참 뒤에 아무렇지 않게 풀리는 거랑 비슷해요.”

계속 운전을 하거나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면서 작품 속 인물과 감정을 털어내곤 하던 이석준은 현재 ‘벙커 트릴로지’의 여운으로 부대낌을 느끼는 중이란다. 

 

뮤지컬배우 임철수 인터뷰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임철수.(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저는 어떤 작품이든 밝게 마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분장실 밖으로 나오면 작품에 대해서는 털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연습시간 외에는 생각을 안해요. 그런데 ‘벙커 트릴로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모르가나’는 처음 연습을 끝내다 보니 배우들의 호흡과 언어유희가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었다. 이에 임철수는 가장 애착 가는 작품으로 ‘모르가나’를 꼽았다.

“솔저 1(이석준·박훈), 2(신성민·오종혁), 3(임철수·문태유)가 함께 대화를 하는 작품은 ‘모르가나’ 뿐이에요. 게다가 친구설정이다 보니 셋이 꽁냥꽁냥하게 되죠. ‘모르가나’를 하고 나면 돈독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트릴로지’ 첫 경험(?) 임철수, 전쟁 같은 연습
 

뮤지컬배우 이석준 인터뷰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이석준.(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순발력이 강한 친구들은 연습기간이 좀 편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카포네 트릴로지’는 그게 먹혔는데 ‘벙커 트릴로지’는 또 달랐어요. 체력적으로는 ‘카포네 트릴로지’가 힘들었는데 작품이 만드는 깊이는 ‘벙커 트릴로지’가 훨씬 힘들었죠.”

3개의 전혀 다른 이야기 속에서 확연히 다른 캐릭터를 구축하는 작업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이석준은 무대 경력 20년차의 베테랑 배우인데다 ‘카포네 트릴로지’에서 이미 한번 경험했지만 임철수는 이 같은 작업이 처음이었다.

“2주에 한 작품이라고 하셔서 설마 했어요. 그런데 진짜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거예요. 하나만으로도 한달은 필요한데 가능할까 싶었어요. 너무 겁먹었죠. 이러다 껍데기만 올라가지 않을까 두려웠거든요. 형님 주도 하에 끝나도 끝이 아닌 연습을 거쳐 템포를 찾으면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데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어요.” 

 

시간이 부족한 게 제일 무서웠다는 임철수는 결국 지나간 작품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매순간을 연습처럼 보냈다.

“그래서 동선이나 활자에 상관없이 입이 먼저 떨어져야 해요. 누가 툭 치면 나올 정도로.”

뮤지컬배우  이석준  임철수 인터뷰11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이석준(왼쪽)과 임철수.(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이에 이석준은 “좀 여유롭다 싶으면 멀리서 대사를 쳐댄다”고 연습실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연습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첫 대사를 내뱉는가 하면 밥을 먹다가도 커피를 마시다가도 화장실에 간 사이에도 부지불식간에 시도 때도 없이 대사를 주고받는다. 


“이제 공연당 25분이면 대사를 전부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죠.”

그렇게 임철수에게 ‘트릴로지’ 첫 경험은 고됐지만 또 신나는 일이었다.


◇안주하지 않는 이석준, 두렵지만 신나는 임철수

“‘모르가나’에서는 이 친구가 다른 호흡을 가지기를 바랐어요. 우리(솔저 1, 2, 4)와는 다른 그런 호흡이요.”

이석준, 김태형PD가 “극장에서 많이 바뀔 것”이라던 예언(?)과 안주하지 않고 매일 바뀌는 이석준의 연기성향은 최근 ‘모르가나’의 대대적인 수정으로 정점을 찍었다. 공연을 불과 한 시간 앞둔 때였다.

“저와 후배인 철수, 그리고 철수와 친한 (신)성민이 관계가 그대로 무대 위로 이어지면 호흡은 좋겠지만 극을 끌고 가는 사람이 저처럼 보일 수 있어요. 어느 순간 자꾸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았죠.”

게다가 ‘모르가나’는 3개의 극 중 제일 처음 만들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준비기간이 짧아 한 작품을 2주만에 완성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이석준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간 극이기도 했다.

“저도 모르게 끌고 가는 입장이다 보니까 그 중심에서 대사 템포마저 제가 당기면 다 따라오고 제가 늦추면 다 늦춰지곤 했어요. 합은 굉장히 좋아졌지만 실제 주인공인 가웨인(임철수가 연기하는 캐릭터)이 안보인다는 자체가 자충수라고 생각했어요.”

뮤지컬배우 임철수 인터뷰4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임철수.(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네(임철수가 연기하는 가웨인) 신이 안보이는 건 문제가 있다”는 이석준의 말에 공연 한 시간 전 대대적인 수정작업에 돌입했다. 베테랑 이석준에게도 모험이었고 당연히 두려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연습을 통해 정리되고 공유된 감정이 확고하다면 그렇게 어렵진 않아요. 공유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못받아치지는 않거든요. 공유한 감정을 이해 못하는 순간이 생기는 게 문제지…사실 하루에 두번도 바꿀 수 있죠.”

그렇게 던진 이석준의 수정안을 임철수는 찰떡같이도 제 것으로 만들어 무대에 섰다. 이에 대해 임철수는 “형은 어렵지 않겠지만”이라고 원망하면서도 “완전 첫 공연처럼 굉장히 흥미로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당근 보다는 채찍? “9년 만에 처음 칭찬받았어요!”
 

뮤지컬배우 이석준 인터뷰9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이석준(.(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그런 문제점이 체크되는 형님이 너무 신기했어요. 자기 진단이 중요하지만 객관적일 수가 없잖아요. 머리로는 100% 이해했지만 한번에 바꾸진 못했어요. 알 거 같은데 표현이 잘 안되더라고요. 형님이 주신 느낌만으로 출발했는데 시작은 좋았어요. 인물들의 관계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행동도 달라지고…새롭게 찾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모르가나를 만났을 때 가웨인의 감정상태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무대 위에 올라간 임철수에 대해 이석준은 “거의 다 왔다”고 평했다.

“철수가 말은 저래도 곰살 맞은 데가 있어요. 안된다고 구시렁구시렁하면서도 ‘제가 한번 볼까요’ 이러고는 가서 연습 잠깐 하고는 제 것을 만들어 와요. 무대에 대해서는 욕심이 되게 많다는 걸 제가 알거든요. 철수한테는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아요.”

‘여기서 뭘 해야 돼’가 아니라 ‘여기서는 어떤 느낌이 필요하니까 찾아와’ 라고 얘기하면 알아서 찾아올 거라는 이석준의 믿음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

“한 시간만에 될 거라고는 저도 생각 못했는데 딱 맞아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일요일(8일) 공연보고는 칭찬 많이 했어요.”

이석준의 말에 임철수가 “9년 만에 처음 칭찬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곤 느닷없이 “형님이 항상 곁에 계셨으면 좋겠어요”라는 임철수에 이석준이 “내가 임종이냐?”고 퉁바리다. ‘형바라기’처럼 잘 따르면서도 할 말은 하는 임철수와 진심으로 후배의 성장을 바라는 선배 이석준의 기분 좋은 티격태격은 이후로도 몇 번씩 이어졌다.


◇‘쾌감’ 주고받는 사이?

뮤지컬배우  이석준  임철수 인터뷰6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이석준(왼쪽)과 임철수.(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어렸을 때부터 봐온 철수가 배우로 수직상승하는 걸 보는 재미가 있어요. ‘39계단’에서 철수는 방대한 대사량을 읽는 인물이었어요. 천재 자폐아 같은 인물로 수학공식을 외어 내뱉었죠. 그때는 진도가 더뎌서 매일 12시간씩 두달을 연습하는데도 버거워 했어요. 지금 무대에 서는 철수를 보고는 깜짝깜짝 놀라요. 제가 예상한 걸 딱 맞추거나 그걸 뛰어넘는 다른 걸 보여줄 때 쾌감을 느끼는데 철수는 그걸 잘해요. 연습을 정말 많이 하거든요.”

무형이 유형으로 만들어지는 쾌감, 이는 창작자들이 느끼는 최고의 감각이기도 하다. 이석준의 표현대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던져도 놀라울 정도로 자기화하는 임철수는 그런 쾌감을 선사하는 후배기도 하다.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보통 혼나기만 하거든요. 형한테 칭찬받기가 진짜 힘들어요. 형님을 위해서 연기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틀린 말을 거의 안하시거든요. 형님이 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겠고 뚫고 싶고 해내고 싶고 그래요. 잘 안되지만 조금씩 도전하며 해냈을 때의 쾌감이 있죠.”

그러곤 금세 “그 쾌감은 정말 극소수지만 너무 좋다”는 임철수에 당근 보다는 채찍이 더 많은 선배 이석준은 “칭찬도 많이 한다”고 항변(?)한다.

“물론 형식적으로 인사한 경우도 있죠. 수고했다거나 철수 많이 컸네…그렇게.”

이석준의 말에 임철수가 “그 말은 100% 별로라는 말”이라고 부연한다. 열심히 했는데 그러면 서운하진 않냐고 물으니 “전혀”라는 임철수의 단호한 답이 돌아온다. 그만큼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석준과 임철수는 서로 쾌감을 주고받는 선후배 사이다.


◇나이가 제일 힘들었던 이석준

뮤지컬배우 이석준 인터뷰11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이석준(.(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정말 큰 문제는 현웃(현실 웃음) 터질 때죠. 현실의 임철수가 무대에서 보일 때면 저게 사람인가 싶기도 해요. 얼마 전에는 관객들한테 ‘귀여운 신병들’이라고 못들어본 대사를 하는 거예요.”

이석준의 말에 임철수가 “다들 너무 굳어 계시길래 풀어주려고…”라며 천연덕스럽게도 웃는다. 실제로 웃음이 터질지도 모를 위험을 안고 있는 극은 ‘모르가나’다.

 

띠동갑인 두 사람이 친구 사이로 설정된 극에서 임철수는 참호 밖으로 향하는 이석준의 뒤에 대고 개구지게 “귀여운 제임스~”라며 웃는가 하면 차진 욕지거리를 주고받기도 한다.

“저는 나이가 정말 힘들었어요. 처음 만났을 때의 철수 얼굴을 해야 하나…아무리 노력을 해도 격차가 줄까 싶기도 하고. 얼마 전에 오랜만에 동네 친구들을 만나면서 제가 착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들 얼굴이 제가 알고 있던 제 얼굴이 아닌 거예요. 그 동안은 젊은 친구들과 작업을 하다 보니 그들이 저의 거울이었어요. 이 친구들이 할 수 있으면 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늘 해맑았죠.”

나이가 제일 어려웠다는 이석준에 임철수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반말을 해보냐”고 희희낙락이다.


◇동선이 어려웠던 임철수 “발가벗겨진 기분?!”
 

뮤지컬배우 임철수 인터뷰1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임철수.(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저는 동선이 제일 어려웠어요. 3면이 관객석이다 보니 어느 한쪽도 죽지 않게(안보이는 일 없이) 움직여야 하죠. 대사에 맞게 움직이지 않으면 어느 한쪽이 가리곤 하거든요. 처음엔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어디를 봐야하는지도 몰랐어요.”

중앙 무대에 3면이 객석인 ‘벙커 트릴로지’의 동선은 자칫 관객석의 한면을 등지는 경우들이 생겨나곤 한다. 이에 이석준은 “마당놀이 스타일을 배워야 한다”고 설명한다.

“물리적인 동선은 그다지 많지 않아요. 실제로 관객 시야를 가릴 곳이 많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한두 발이면 무대 끝까지 닿아요. 감정신이 많아서 훨씬 크게 느껴질 뿐이죠. 사실 동선 중 어려운 건 방향성이에요. 전면만 객석인 무대는 연출이 있는 자리만 보면 되지만 3면에 관객들이 있으니 입체적인 연기를 해야 하죠. 반쪽만으로 혹은 등으로 연기하는 것도 연습해야 해요.”

다닥다닥 붙은 객석의 관객들은 무대 위 배우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허투루 보려 해봐야 볼 수 없을 만큼 근접해 있다.

“인물과 인물의 감정을 코앞에서 보기 때문에 손끝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다 보여요. 그 작은 움직임까지도 감정과 연결해 계획된 무언가여야 하죠. 계획된 그 잔 움직임 중 하나만 무너져도 그날 공연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예요.”

잔 움직임은 물론 호흡 하나도 신경써야 하는, 절대 기술적으로 눙치고 넘길 수 없는 연기를 해야하는 무대를 임철수는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다.

뮤지컬배우 이석준 인터뷰12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이석준.(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처음엔 정말 부담스러웠어요. 지금도 여전히 부끄럽고 부담스럽지만 이제야 조금씩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형님이 아예 한명을 찍어서 보라고 하셨는데 처음엔 못하겠더니 해보니 재밌어요. 이제야 객석을 볼 마음이 생겼죠.”

처음 3면 무대를 대하며 당황하던 후배들에게 이석준은 “진짜 좋은 기회”라고 조언하곤 한다.

“정말 소중한 자산이 되거든요. ‘벙커 트릴로지’의 어마무시한 잔 움직임들 그대로 대극장에 가지고 올라가도 극 자체가 달라져요. 움직임을 더 키워야할 것 같지만 그대로 해도 극 자체가 훨씬 풍성해 보이거든요.”


◇단순하지만 어려운 형님의 조언, “스스로 화제를 만들고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는 힘”
 

뮤지컬배우  이석준  임철수 인터뷰14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이석준(위)과 임철수.(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형님께서 주신 건 더 확실하게 표현하라는 말씀이었어요. 단순하지만 어려운 말이었죠. ‘모르가나’의 큰 줄기는 가웨인이니 센터로 들어갈 때는 짱 박혀 있지 말고 확실히 들어가 보여주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저에겐 너무 두려운 말이었어요. 한달 내내 연습하고 공연까지 올렸는데? 하지만 형이 던져주신 큰 줄기를 따라가다 보니 새로운 해석들이 생기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지금도 찾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찾아가는 그 과정이 무대에서 저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임철수의 말에 이석준은 “철수는 상대방에 잘 맞춰주는, 배려가 좋은 배우”라며 “의지를 가지고 고집스럽게 자신이 중심으로 들어가야 할 때도 바깥으로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고 아쉬움을 전한다.

“제가 앞으로도 꾸준히 철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스스로 화제를 만들고 그 화제의 중심에 서면 좋겠다는 거예요.”

과한 행동이나 분량을 고집하라는 의미는 분명 아니다. 분량이 적더라도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배우가 되길 바란다는 이석준의 말에 임철수는 “끌고 갈 때는 확 끌고 가는 힘이 정말 필요한 것 같다”며 “‘안녕 유에프오’ 때도 느꼈는데 아직은 형님 말씀을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뮤지컬배우 이석준 인터뷰7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이석준.(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안녕 유에프오’도 잘했어요. 하지만 철수가 더 중심으로 들어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인물들과 균형을 맞추기 보다는 튀어올라왔어야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렇게 말한 이석준은 생애 처음으로 뮤지컬을 봤던 때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본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받은 충격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배우가 누군지도, 주인공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걸어 나와서 신문을 펼치는 순간 주인공인 걸 알겠더라고요. 시선이 집중된 것도 아니고 조명이 따로 비추는 것도 아닌데 스카이인 걸 알겠는 그 순간은 제 공연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기억 중 하나예요. 걸음걸이도 느낌도 분명 달랐고 구분되는 호흡도 있었죠.”


◇두려운 배우가 돼가고 있는 임철수, 존재 자체로 귀감이 되는 이석준
 

뮤지컬배우  이석준  임철수 인터뷰1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이석준(왼쪽)과 임철수.(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형님은 존재 자체로 저희들에겐 귀감이에요. 형이 ‘벙커 트릴로지’를 못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다들 난리도 아니었죠.”

오글거린다면서 잘도 이석준에 대한 감정을 털어놓던 임철수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함께 하던 시절의 날 좋던 때를 떠올렸다.

“형이랑 담배를 피우고 지하 극장으로 들어가면서 형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우리는 항상 극장으로 들어가야 하잖아요. 등으로도 감정을 표현하시는 것처럼 되게 쓸쓸해 보였거든요. 진짜 멋있었어요. 형은 항상 무대를 지키고 무대하실 때 가장 신나하거든요.”

임철수의 말처럼 드라마, 영화 등으로 영역을 넓힌 이석준이 1년 동안의 계획을 세우는 장르는 공연뿐이다.

“2년 동안 너무 심하게 달린 것 같아서 섭외 온 작품 대부분을 거절했어요. 현재 확정된 건 한두 작품 정도인데 또 이러다 언제 발동 걸릴지 몰라요.”

공연을 반으로 줄이고 드라마나 영화에 좀 더 출연하기를 바라는 소속사는 답답해하지만 이석준에게 “중심은 늘 공연”이다.

“우리 원숭이는…두려운 배우가 돼가고 있어요. 그 두려움은 배우로서 상대 배역을 인정하는 순간 생기는 건데 대한민국에 철수 같은 캐릭터는 없어요. 스스로가 가진 색이 굉장히 좋은 게 많죠. 진짜 좋은 배우가 될 거 같아요.”

9년 만에 후배에 대한 최고의 찬사를 털어놓고는 민망한지 “밥그릇 조심해야 겠다”는 둥 “등 뒤도 좀 조심하고 계단을 내려갈 때도 뒤에는 못오게 하고 있다”는 둥 우스갯소리를 늘어놓는다.

“형님이랑 계속 작품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사실 (대하기가) 어렵거든요. 편하고 좋으시지만 작품 얘기만 하면 매서워지는 형님이 너무 좋아요. 나도 저런 선배가 돼야지 하는데 쉽진 않죠. 계속 옆에 계셨으면 좋겠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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