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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연인에서 원수로! ‘트로이의 여인들’ 카산드라 이소연·헬레네 김준수

[Pair Paly 인터뷰]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이소연과 김준수

입력 2016-11-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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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의 여인들' 이소연, 김준수 인터뷰3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배우 이소연(왼쪽)과 김준수.(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저번엔 저(애울)를 찾으러 지옥으로 오더니 이번엔 얘(헬레네) 때문에 사는 게 지옥이 됐어요.”

오페라 ‘오르페오’와 한국전통 판소리를 접목한 전작 ‘오르페오전’에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연인 올페와 애울이었다.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의 춘향과 이몽룡, ‘배비장전’의 배비장과 애랑 등 연인으로 분했던 김준수와 이소연이 새로운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11월 11~20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원수로 만난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싱가포르의 옹켕센 연출, 배삼식 극본, 안숙선 작창, 정재일 작곡·음악감독, 중국의 안무가 원후이 등이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 전쟁 3부작’ 중 마지막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국립창극단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이소연은 비운의 트로이 공주 카산드라, 김준수는 스파르타의 왕비인 절세가인 헬레네를 연기한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우스(최호성)의 아내이면서 트로이의 둘째 왕자 파리스(정재일)에 마음을 빼앗긴 헬레네로 인해 전쟁이 시작되고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를 비롯한 왕비 헤큐바(김금미), 장남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김지숙) 등 ‘트로이의 여인들’은 적국의 첩으로 혹은 노예로 끌려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상남자’ 김준수·이소연의 치명적 매력? 헬레네와 ‘불의 여신’ 카산드라

'트로이의 여인들' 김준수 인터뷰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생애 첫 여성연기에 도전하는 배우 김준수.(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요즘은 (이)소연 누나 치마를 빌려서 입고 (연습을) 하고 있어요. 바지를 입었을 때랑은 움직임이며 자세며 선이 달라지거든요.”

김준수는 헬레네로 첫 여성 연기에 도전한다. 이에 대한 부담은 여성스러운 목소리 변조가 아닌 인물에 대한 이해와 설득이다.

“카산드라도 그렇고 저(헬레네)도 짧게 등장해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나가는 역할이에요. 헬레네는 스파르타에서 사랑을 따라 넘어온 여자예요. 나쁜 여자고 배신의 아이콘이죠. 누나나 선생님들도 저한테 만날 여시라고 부르세요. 꼬리 100개 달린 백여시? 그래도 노래를 부르고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이해도 가요. 여성들은 사랑받고 싶고 사랑받고 있는 걸 확인하길 원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여성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아요. 결국 무대에서 납득될 수밖에 없게, 설득력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관건이죠.”

이에 김준수의 고민은 ‘성이 없는 미지의 인물’, ‘신비로운 절세가인’이라는 설정이다. 쉽지 않은 신비로운 매력을 표현하기 위한 조력자이자 스승은 이소연이다.

“무대에 섰을 때 매력적이게 보여야하는 게 가장 고민이고 숙제죠. 여성 의상을 입고 화장을 한 제 모습이 이질감이 들지 않아야 할텐데…. 과장된 몸짓보다는 절제된 동작으로 표현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누나한테 여성스러운 자세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있죠.”

치명적이고 미워할 수 없는 헬레네를 표현하려 노력하는 김준수를 지켜본 이소연의 “처음엔 메넬라우스에 안길 때도 상남자였다”는 증언(?)에 김준수는 “안아만 봤지 안겨본 적이 없어서…. 옹켕센 연출님도 다리를 좀 가지런히 모아 비스듬히 둬야한다고 하셨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배우 이소연은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비운의 공주 카산드라로 연기변신에 나선다.(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이소연은 헬레네에 대해 “호기심이 가는 인물이다 보니 예쁜 여자가 나와도 뻔하고 못생긴 여자도 뻔하다. 제3의 성이라는 설정이 적절한 것 같다”며 김준수에게 여성스러워지기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 귀띔한다. 


“자꾸 다리를 벌리고 버텨요. 어떻게 하면 여릿한 선을 만들고 치명적이게 안기지는지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죠. 이제는 제법 ‘여성여성’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포스터 사진 찍는데 예쁘더라고요.”

여성스럽고 지고지순한 여인상을 주로 연기해왔던 이소연 역시 ‘트로이의 여인들’ 카산드라 공주로 연기변신에 나선다. 카산드라는 스파르타 왕국 아가멤논의 첩으로 끌려갈 처지에 처하는 비운의 공주다.

“불의 여신같은 캐릭터예요. 저주 받았고 받은 만큼 되갚아주겠다는 복수심에 가득 차 있죠. 그러면서도 단순하게 화를 내고 분노하기 보다는 전쟁 폐허 속 참상, 지옥같은 현실에 대한 슬픔이 표현되는 것 같아요. 단순히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여인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아픔이 한구석에 있는 인물이죠. 판소리에서는 만날 수 없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제 성격 자체가 여성스럽지 못해서 오히려 분출하는 게 편해요. 여성스러움을 표현하려면 한꺼풀 씌워야 하거든요.”

이소연의 말에 김준수가 “이래봬도 속은 상남자”라며 “누나한테 잘 어울리는 강렬한 역할”이라고 거든다.

“전작들은 처음부터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관객들과 호흡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트로이의 여인들’의 카산드라나 헬레네는 중간에 나와서 5~7분 정도 별처럼 반짝 빛나야 하는 별똥별 같은 역할이에요. 감정이나 호흡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시작부터 절정으로 치달아 불타올라 사라지는 느낌이죠. 등장과 동시에 관객들을 설득시켜야 하고 정말 반짝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야 하는 게 생소하면서 새롭기도 해요.”


◇누구나 겪는 사랑의 흔들림, 김준수 “메넬라우스는 청국장, 파리스는 와인같은 남자”

'트로이의 여인들' 헬레네 김준수.(사진제공=국
‘트로이의 여인들’ 헬레네 김준수.(사진=국립극장, 최민석 기자)

 

“평소에도 누나나 선배님들께 ‘여자들은 왜 이러는 거예요?’라고 자주 물어요. 100% 이해는 못했지만 공통적으로 느끼는 건 늘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받고 싶어한다는 거죠. 헬레네의 마음도 똑같지 않았을까요? 원래 남편 메넬라우스가 청국장같은 남자라면 유혹에 넘어가 사랑에 빠진 파리스는 와인같은 사람인 것 같아요.”

남편, 오래된 연인 등이 있지만 새로운 사랑에 흔들리는 건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상황이다. ‘불륜’에 유독 엄격한 한국인에게 그런 헬레네는 이소연의 표현대로 ‘모 아니면 도’인 캐릭터다.

“연출님께서 남편도 파리스도 사랑한다고 하셔서 혼돈이 왔었어요. 파리스에 끌려서 트로이로 왔으니 지금은 이 사랑이 더 클 것 같은데…마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네가(메넬라우스) 싫어서 떠난 건 아니었다는 느낌이죠. 속을 알 수 없는 오묘하고도 신비로운 여자인 것 같아요. 게다가 남자배우가 연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트로이의 여인들' 김준수 인터뷰6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배우 김준수.(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생각만으로도 아찔한지 김준수는 “재수 없으면 어떡하지”라며 한걱정이다. 이에 2015년 ‘적벽가’의 공명을 연기할 때보다 더 많은 고민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여성적인 몸짓은 있었지만 공명이는 그래도 남자였잖아요. 여자인 헬레네를 남자배우가 연기하지만 어색하거나 이질감이 들지 않게 노력 중이에요. 제가 좀 더 태연하고 부끄럽지 않아야 관객 분들도 더 진지하게 봐주실 것 같아요. 처음엔 안기고 기대는 신을 할 때마다 어색해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이제야 좀 느낌을 찾아가고 있죠.”

이소연 역시 “처음엔 단원들도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진지해도 웃기고 웃어도 웃기고…. 지금은 분장하고 그러면 진심으로 매력적이겠다 싶다”며 김준수를 북돋운다.

“메넬라우스 배우(최호성)는 한숨만 쉬어요. 그래도 무대 위에서 애정신을 할 때는 정말 사랑해 줘요. 무대 내려와서는 죽인다고 난리지만.”

어렵고 고민이 많아지는 역할이지만 김준수는 헬레네를 ‘인생배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본인의 걱정과는 달리 국립창극단 선후배들이 “뒤태가 벌써 여성여성하다”고 아우성이라는 이소연의 귀띔이다.

“의상이 너무 기대돼요. 얼마 전에 피팅을 했는데 매력적이에요. 특이하기도 하고 창극무대에서는 보기 드문 의상이기도 하죠.”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답답함, 이소연 “요즘의 우리 같지 않나요?”

트로이의 여인들
‘트로이의 여인들’ 카산드라 이소연.(사진=국립극장, 최민석 기자)

 

“연출님께서는 관객들이 처음 들어서는 순간부터 긴장하다가 끝나고서야 휴~ 이렇게 되기를 원하신데요. 단 한순간도 숨을 내 쉴 수 없이 압도되는 작품이죠. 사람들은 창극에서 풍자, 해학 등을, 젊은 세대들은 로맨스를 보고 싶어하죠.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은 분명 있어요. ‘트로이의 여인들’은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잖아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이들의 삶이 지금 우리의 현실 같아요. 정말 복창이 터지고 속에서 천불이 나죠.”

그래서 ‘불의 여신’이 된 것 같다는 이소연은 불통, 위안부 등 현 시대가 가진 안타까움을 전한다.

“이 환란을 어떻게 이겨내야하는지를 얘기해주는데 사람들한테는 씨알도 안먹히고 저(카산드라) 스스로는 어딘가로 끌려가 아가멤논의 첩이 돼야하죠. 아폴로 신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지만 거부당한 원망도 품고 있어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끌려가 몸이 더렵혀질 위기에 처한 여자의 한은 가슴 아픈 종군위안부 문제를 떠올리게도 하죠.”


◇카산드라의 대금·헬레네의 피아노, 악기는 제3의 목소리

'트로이의 여인들' 이소연 인터뷰8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배우 이소연.(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카산드라의 대금, 헬레네의 피아노 등 ‘트로이의 여인들’은 각 캐릭터별로 특정 악기와 짝을 이룬다.

 

캐릭터의 주요 정서와 그를 연기하는 배우와 더불어 악기는 또 다른 목소리이며 감정이기도 하다.

“카산드라의 악기는 대금이에요. 연출님께서 음색을 듣고 불타오르는 느낌을 받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악기도 캐릭터가 부여된 느낌이었어요. 다른 극에 비해 기악과의 교류가 굉장히 많죠. 작곡가나 음악감독에 의지하지 않고 만들어내는 음악도 많은 작품이에요. 우리 소리를 진하게 내면서도 예전과는 다른 색다른 소리가 나와서 좋은 것 같아요.”

이소연의 표현처럼 “한국 전통 색을 진하게 내면서도 색다른, 음색을 보다 진하게 입히는 느낌”은 북의 절제에서 기인한다. 창자와 고수로 구성된 판소리 형식에서 북의 리듬을 비워내면서 악기는 또 다른 목소리가 된다.

“저를 도와주는 악기가 되기도 하고 대화하는 느낌을 주기도 해요. 카산드라의 신인 아폴로가 돼 상대역이 되기도 하죠. 배우와 연주자와의 호흡이 잘 맞아야하는 작품이에요.” 

 

헬레네 김준수와 호흡을 맞추는 악기는 한국 전통 악기가 아닌 피아노다. 파리스로 직접 무대에 오르는 작곡가이자 음악감독 정재일의 피아노 반주에 김준수는 헬레네로 노래한다.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배우 김준수.(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정재일 선생님과 함께 무대에 올라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 같아요헬레네는 작창보다 작곡 비중이 더 많아서 선생님의 피아노에 저의 소리가 얹히죠무대 위에서 주고받는 호흡이 중요해요.”



◇판소리의 원형을 찾아서, “가장 한국적이고도 새로운 극”

“대중에 맞추려다 보니 저희도 모르는 새 변했었나 봐요. 이렇게 악기를 비워내고 한 게 언제였나 싶어요. 처음에는 굉장히 많은 말과 요구를 했어요. 리듬이 안들어가도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의심했고 악기나 효과음 등이 극에 당연하게 들어가야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두 사람은 옹켕센 연출에게 설득되고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있는 소리까지 비워내고, 소리 안에서 여유를 찾는 느낌을 내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게 됐다. 더불어 원래 창극의 모습, 판소리의 원형 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옛 것의 고집이 아니라 누가 들어도 창극,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정말 새로우면서도 재밌고 멋있는 창극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면이 늘 아쉬웠는데 ‘트로이의 여인들’은 전통적인 판소리가 잘 살아 있으면서도 새로운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이소연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배우 이소연.(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함께 하는 창작진과 배우들에 대한 신뢰가 묻어나는 이소연의 말에 김준수는 “이번 극을 통해서 늘 부딪히는 부분들이 확실히 정리되고 우리 소리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창극이 자리매김하면 좋겠다”고 바람을 보탠다.  

 

“다양한 시도에서도 판소리 다섯바탕의 ‘소리길’이 묻어나는 게 판소리의 원형이 살아 있는 작품 아닐까요? 추임새 등 판소리에는 아무리 음표로 그려도 표현할 수 없는 소리들이 있어요. 장단을 비워내고 사람의 소리가 잘 들리게, 거의 무반주 상태에서 소리를 하기 때문에 ‘트로이의 여인들’은 우리 소리의 맛을 더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될 거예요.”

판소리의 원형에 대한 김준수의 말에 이소연은 “관객들이 더 잘 알고 있다”고 덧붙인다.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배우 이소연(왼쪽)과 김준수.(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꾸미는 소리와 잠재된 상태에서 진하게 우러나는 소리는 분명 달라요. ‘트로이의 여인들’은 대중들이 좋아하는 극성은 버리지 않으면서 뿌리부터 학습됐던 판소리의 원형들을 진하게 우리는 작품이죠. 이 작품 자체가 판소리랑 잘 맞는 것도 같아요. 강하면서 울림이 있고 한이 묻어나죠. 분노, 원망, 슬픔 등 판소리로 표현 가능한 감정들이 이 작품의 중 정서거든요. 외국 작품이지만 오히려 ‘진짜 판소리 창극이 이렇구나’라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이소연의 표현처럼 ‘소리꾼들의 도전’은 ‘트로이의 여인들’로 전환점을 맞을 모양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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