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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r Play 인터뷰] 뮤지컬 ‘파리넬리’, 미래를 보는(?) ‘주넬리’ 이주광과 사랑스럽지만 기능적인 인물? ‘안젤로’ 박소연

[Pair Play 인터뷰] 거세당한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와 남장여자 안젤로, 쉽지 않은 여정을 함께 한 이주광과 박소연

입력 2016-05-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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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리넬리' 박소연 .이주광 인터뷰16
뮤지컬 ‘파리넬리’의 안젤로 박소연과 주넬리 이주광.(사진=양윤모 기자)

 

“저에겐 여러 가지 초능력이 있는데…그 중 하나가 미래를 보는 거죠!”

뮤지컬 ‘파리넬리’에 출연하면서 ‘주넬리’(이주광의 파리넬리)로 불리는 이주광의 사뭇 진지하지만 뜬금없는 고백(?)에 박소연의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란 모양을 띤다. 그리곤 한다는 말이 “난 어때?”다. “아직 안보였어요. 보이면 얘기해 줄게!” 또 그걸 이주광은 진지하게도 받아친다.

“안젤로는 파리넬리를 위해 존재하는 기능적인 인물이에요.”
느닷없는 박소연의 말에 이주광이 “왜 갑자기 심경고백을 하고 그래”란다. 둘의 주거니 받거니 만담 같은 대화는 결국 박장대소로 마무리됐다.


◇거세당한 카스트라토와 남장여자의 목소리

뮤지컬 '파리넬리' 박소연 인터뷰17
뮤지컬 ‘파리넬리’의 남장여자이자 파리넬리의 연인 안젤로를 연기하는 박소연.(사진=양윤모 기자)

 

“한달 사이에 하루에도 몇 번씩 장면을 만들었다가 없애고 또 만들었다 없애고 수십 차례를 반복했어요. 여기에 꼭 (한숨)이라고 써주세요!”

박소연의 증언(?)처럼 세 번째 공연을 맞으면서 뮤지컬 ‘파리넬리’는 대대적인 변화를 꾀했다. 드라마적 요소가 추가됐고 개연성을 위한 아역도 생겼다. 이에 초연부터 무대에 올랐던 루이스초이와 이번에 새로 투입된 이주광이 파리넬리로 더블캐스팅됐다. 파리넬리의 소울메이트인 남장여자 안젤로는 ‘투란도트’의 얼음공주 박소연이다.

이 두 사람에게 주어진 연습시간은 한달 남짓, 이주광은 카스트라토(변성기가 되기 전 거세로 소년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남자성악가) 파리넬리의 목소리를 내야했고 하이소프라노의 박소연은 다소 낮은 음과 대사들을 표현해 내야했다.

“전작인 ‘투란도트’가 고음에 강한 넘버들이라 목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저음으로 말하고 노래하다보니 목에 무리가 오긴 했어요. 다행스럽게도 안젤로가 노래 부르는 신은 독백이거나 제가 여자인 걸 아는 헨델과 카를로 앞이에요. 연습할 때는 너무 힘들고 고민이 많았는데 막상 무대에 오르니 남성성을 너무 많이 가져가지 않아도 의상과 분장이 해결해주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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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카운터테너(가성으로 소프라노의 음역을 구사하는 남성 성악가)로 활동 중인 초연배우 루이스초이와 비교될 것이 자명한 이주광의 중압감은 엄청났다.(사진=양윤모 기자)

 

목소리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남자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애쓰던 박소연은 결국 목 부종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고 이주광은 피맛이 올라올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반복했다. 특히 실제 카운터테너(가성으로 소프라노의 음역을 구사하는 남성 성악가)로 활동 중인 초연배우 루이스초이와 비교될 것이 자명한 이주광의 중압감은 더 했다.

“관객들은 ‘파리넬리’를 보러 오시는 건데 ‘못미친다’는 느낌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런 소리(가성)를 낼 줄은 알았지만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거든요. 루이스랑 보컬 코치에게 시도 때도 없이 조언을 구했죠. 소리를 안정적으로 내고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데 집중해서 연습했어요. 단 몇명이라도 제 마음에 담긴 무언가를 느끼고 돌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모두가 힘들었던 변화, 연습만이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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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으로 수정된 뮤지컬 ‘파리넬리’는 이주광 뿐 아니라 루이스초이에게도 도전에 가까웠다. 하지만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일컬어지는 ‘주넬리와 루넬리의 재능 공유’는 꽤 유효해 보인다.(사진=양윤모 기자)

“저는 아무래도 뮤지컬 배우다 보니 대본 리딩을 하면서 드라마적 측면을 중점적으로 보게 됐죠. 수정 전의 대본으로는 뮤지컬 ‘리카르도’지 ‘파리넬리’라는 느낌이 없었어요. 파리넬리는 노래를 할 뿐 감정선이나 사연, 개연성이 좀 아쉬웠거든요.” 


대대적으로 수정된 뮤지컬 ‘파리넬리’는 이주광 뿐 아니라 루이스초이에게도 도전에 가까웠다.

 

그간 ‘파리넬리’의 오페라 넘버들로 카운터테너로서의 특장점을 한껏 살렸던 루이스초이는 진성을 내야했고 극적 연기에 애를 먹었다. 

 

하지만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일컬어지는 ‘주넬리와 루넬리(루이스초이의 파리넬리)의 재능 공유’는 꽤 유효해 보인다.

가성으로만 표현되는 넘버들로 채워 ‘오페라’에 가까웠던 ‘파리넬리’는 대대적인 변화를 거쳐 가성과 진성을 오가는 곡들로 새로 꾸리면서 뮤지컬다운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성과 가성을 오가며 노래하고 연기해야하는 배우에겐 중압감에 가까운 숙제였다. 특히 마지막의 ‘울게하소서’(Lascia Chio Pianga)는 서울대 성악과 출신 박소연의 증언에 따르면 “한달만에 저런 소리를 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곡”이다.

“사람 몸이 신기한 게 가성을 내면 진성이 약해지고 진성이 됐다 싶으면 가성이 약해지는 거예요. 둘 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결국 연습뿐이었죠. 처음엔 10~15분을 연습하면 목이 쉬는 듯했는데 반복하다 보니 30분을 쉬지 않고 버틸 힘이 생겼어요. 그렇게 버티는 시간을 늘려갔죠.”

이주광의 노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노력은 가상해도 남의 노력은 당연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한다. 객석에서 ‘얼마나 하는지 두고 보자’는 태세로 지켜보는 이들 앞에 맨몸으로 나서는 배우들은 그 노력을 인정받는 그 순간의 희열로 무대에 설 힘을 얻곤 한다.


◇파리넬리의 결핍, 안젤로로 위안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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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카를로와 안젤로의 등장으로 개연성을 확보했고 두 사람의 사랑을 보다 애달프게 하고 파리넬리의 고독과 결핍을 한껏 끌어올린다.(사진=양윤모 기자)

 

“파리넬리를 여린 사람, 돌봐줘야할 사람으로 표현했어요. 그게(돌보는 게) 가능한 사람은 형 리카르도죠. 거세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어린 카를로는 안젤로의 도움을 받기 전까지 결핍에 시달렸어요. 노래를 하지 않으면 밥도 주지 않고 오직 노래만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안젤로를 만나 위안을 받죠. 그렇지만 또 헤어지고 한참 뒤에야 형을 만나요. 그 동안 카를로의 속에는 꿰매지 못한 상처들이 늘어가죠.”

마취기술도 없던 시절, 이발사가 칼로 도려내는 순간부터 아물 때까지, 안젤로의 동생처럼 목숨을 잃거나 불행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은 카스트라토의 삶이 순탄했을 리 만무다. 이 같은 과정은 어린 카를로와 안젤로의 등장으로 개연성을 확보했고 두 사람의 사랑을 보다 애달프게 하고 파리넬리의 고독과 결핍을 한껏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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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리넬리'에서 여장남자 안젤로를 연기하는 박소연.(사진=양윤모 기자)

“형의 노래는 날 비참하게 해. 그 말 너무 못돼 빠지지 않았어요?”
박소연의 퉁바리에 이주광이 “오죽했으면”이라고 하소연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3년 동안 댄스곡만 부른 거예요. ‘나는 파도를 가르는 배’(Son qual nave Ch‘agitata)는 옛날로 따지면 엄청난 댄스곡이잖아요.”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피를 흘리고 있고 악몽에 시달리며 잠도 못자는 상황에서 형 리카르도는 술에 취하고 도박에 빠져 휘청거리고 있다. 그 3년 동안 한곡, 그것도 ‘엄청난’ 댄스곡만 부르고 있는 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이주광은 무대 위에서 오열하고 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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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리넬리’에서 카스트라토를 연기하는 이주광.(사진=양윤모 기자)

 

“파리넬리가 여러 번 무너지고 고통 받는 장면이 나와요. 스스로 만들어내는 악몽, 아버지, 형, 거세를 집행했던 피와 칼의 이미지, 어린 힘으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어할 수 없는 고통…. 신의 선택을 받아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하지만 파리넬리는 늘 자라면서 칼이 닿았던 공포와 악몽에 시달려요.”

이에 파리넬리는 이게 맞은 삶인지, 하늘이 원하는 삶인지를 묻고 또 묻는다. 사람들이 나를 원하는 게 아니라 내 목소리만을 원하는 느낌, 급기야 형 리카르도까지 그러는 걸 보면서 존재의 의미를 갈급하게 된다.

“왜 난 여기 있고 저 사람들은 저기서 구걸하고 있는 걸까? 자신의 감정 뿐 아니라 ‘위아더월드’처럼 모두가 왜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파리넬리가 된 듯 열심히도 설명하는 이주광에 박소연이 안젤로처럼 안타까운 마음과 위안을 전한다.

“결국 그 목소리가 나(안젤로)를 살리잖아.”


◇여린 주넬리와 도도한 루넬리, 불면증 이주광과 조물조물 박소연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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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은 루이스의 파리넬리가 콧대 높고 도도한 느낌이라면 키도 체격도 더 큰 이주광의 파리넬리는 여리고 상처받은 새 같다고 평했다.(사진=양윤모 기자)

“안젤로는 파리넬리의 드라마를 만들어주기 위해 가상으로 만들어져 삽입된 인물이에요. 그러다 보니 제 안에 있는 저만의 드라마 줄기를 연결하는 게 여전히 해결이 안됐어요. 결국 저는 파리넬리를 위해 존재하죠. 그래서 큰 욕심을 안부려요. 파리넬리가 굵은 줄기고 리카르도가 가지라면 전 샛길이에요. 그 샛길이 두드러져 보이면 균형이 깨져버리잖아요.”


안젤로의 감정 그라데이션이 매끄럽지 못하고 튀는 부분은 여전히 박소연의 숙제로 남았다. 원캐스트로 이주광, 루이스초이를 상대로 연기하는 박소연은 두 사람의 상반되는 파리넬리의 매력을 전하기도 했다.

“루이스의 파리넬리가 콧대 높고 도도한 느낌이라면 키도 체격도 더 큰 주광 배우의 파리넬리는 여리고 상처받은 새 같아요. 성향과 액팅도 넘버도 전혀 다른 파리넬리를 대하면서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서울대 성악과 출신 박소연의 목소리는 무대 위 루이스초이를 잠들게 할 정도다. 극 중 안젤로의 넘버인 ‘그리운 나무 그늘’은 자장가로 분류되는 노래다.어린 카를로·안젤로와 서로를 그리워하는 성인 카를로·안젤로가 교차되는 이 장면은 ‘파리넬리’의 백미다. 

 

“그 장면은 편지만 주고받으며 서로를 그리워하는 상태예요. 성인이 된 안젤로를 상상해봤자 함께 있었던 이미지 밖에 안 떠오르니까 더 애틋하죠. 연습하면서 소연 누나가 ‘그리운 나무 그늘’을 부르는데 진짜 다들 잘 뻔했어요. 여릿하면서도 힘 있게 끌고 가는, 사람을 조물조물해주는 느낌이죠. 성대로 힐링 마사지를 받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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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시절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던 이주광은 박소연의 ‘그리운 나무 그늘’에 대해 조물조물해주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사진=양윤모 기자)

 

중학교시절부터 불면증에 시달려온 이주광에게는 녹음해 자장가로 쓰고 싶을 정도란다.

“파리넬리가 겪는 악몽의 공포를 잘 이해하고 있어요. 어려서부터 꿈을 꾸면 다 이뤄지는 거예요. 친구가 사고를 당하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미리 꿈을 꿨죠. 나쁜 일이 더 잘 맞다보니까 제가 발설해서 현실이 되나 싶어 잠을 못자겠더라고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열다섯부터 이주광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과 학교에서 늦게야 돌아오는 누나, 혼자서 자신의 꿈에 두려워 떨던 이주광의 불면증은 악몽에 시달리는 파리넬리의 처절한 연기로 승화됐다.

 

이주광은 자신의 꿈과 불면증을 ‘초능력’이라고 표현했다. 작품 제목과 출연 배우들만 봐도 어디까지 흥행할지가 예측될 정도라니 이주광의 표현대로 초능력이라면 초능력이다.


◇‘열일’ 예약 이주광·박소연, 지금부터 “건강한 한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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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아닌 열일을 하고 싶다는 파리넬리 역의 이주광.(사진=양윤모 기자)

“다른 공연도 할 수 있습니다!”

 

‘투란도트’의 초연배우인 박소연은 ‘파리넬리’ 폐막 후 7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10주년, 중국 하얼빈 오페라 하우스 개관 초청공연 무대에 올라야 하니 8월까지는 스케줄이 꽉 찬 상태다. 그럼에도 그는 두 팔까지 높이 치켜들며 “열일”을 외친다.

이주광은 ‘파리넬리’ 무대에 서기 전 7개월의 공백기를 거쳤다. 그 사이 이삿짐 나르기, 서빙 등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작품을 하느니 그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앙상블로 시작해 데뷔한 지 15년이 돼 가는데 작품 수가 몇 개 안돼요. 이제부터는 다작은 아니지만 ‘열일’을 하려고요.”

이주광의 말에 박소연은 “실력에 비해 좀 덜 알려져 있으니 좀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하면 좋겠다”고 애정어린 조언을 전하기도 했다.

“소극장부터 대작까지 가리지는 않지만 소비되고 싶지는 않아요. 20대에는 어떻게든 저 자신을 알리려고 노력했다면 30대인 지금은 정체성과 자아, 고민한 예술의 흔적과 노하우들을 다 무대에 쏟아 붓고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든 작품이든 관객들이 많이 보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작품을 한다고 하면 금방 매진시키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전 자랑스러운 작품만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 많은 사람들이 같이 감동을 즐기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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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소처럼’ 일하겠다는 이주광과 박소연.(사진=양윤모 기자)

 

박소연은 “한명의 관객을 위해서도 노래 부를 마음은 돼 있다. 기쁨과 삶의 힐링요소가 되는 노래를 하는 배우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제가 가진 에너지를 다 쏟아내면 그만큼이 또 돌아온다고 믿어요. 앞으로도 다 쏟아 붓고 충전하겠습니다. 소처럼.”

박소연의 말에 이주광이 “건강한 한우처럼!”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보양식, 마사지, 링거까지 맞으면서 고3 수험생일 때보다 건강을 챙기고 있다는 박소연과 이주광이 크게도 외친다.

“뼈와 살을 깎듯이 연기하고 있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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