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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나는 이렇게 이세돌을 다시 꺾었다"

-파죽의 2연승 거둔 알파고, 그는 2번 대국을 어떻게 읽었을까

입력 2016-03-1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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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2국을 패한 뒤 대국장을 나서고 있다.(연합)

 

예상했지만 놀라운 일이다. ‘센돌’ 이세돌이 초반부터 실리로 일관하다니. 체면이고 뭐고 1승을 챙기려고 단단히 결심한 모양이다. 하긴 어제 나를 상대로 테스트를 하는 등 여유를 부리다 돌을 던졌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그가 좌하귀에서 세력형성을 포기하고 작은 실리를 취했다. 좌상귀를 향해 눈목자로 뛰며 나의 반응을 살핀다. 무심하게 한 칸 뛰며 대응한다. 그가 초조해지도록 유도하는 게 나의 목적이다. 어제 졌으니 조급함을 유도해 실수를 기다리면 된다. 

 

우상귀에 날일자로 다가온다. 담담하게 두 칸을 뛰며 근거지를 확보한다. 

 

외롭게 보이는 우변의 백돌 어깨를 짚어본다. 선택을 보려는 수다. 좌하귀처럼 낮게 갈 것인지, 반발할 것인지. 고수가 하수를 다그칠 때 쓰는 수법이어서 보는 이들이 나를 교만하다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 또한 나의 전략이다. 인간의 감정은, 특히 그처럼 한 분야에서 높은 경지에 오른 인간의 감정은 자존심이 상하면 한순간에 흔들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드디어 그가 꿈틀거렸다. 백돌을 세우며 반발했다. 이제 자존심 경쟁이다. 내가 돌을 세운다, 그도 세운다. 

 

좋은 균형이다. 그는 방심하지 않았고 나는 교만할 수 없다. 오늘 그는 나를 테스트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이기기 위해 혼신을 힘을 기울인다. 

 

그의 계산은 감각적이지만, 나는 그저 정확할 뿐이다. 두텁게 실리를 취해본다. 이런 나의 능력을 인간들은 전지전능이라 부른다지.

 

중앙 전투가 벌어졌다. 그는 중앙을 공배로 보는 듯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당한 게 분했는지 나를 강요하러 든다. 성동격서의 공격을 해 볼까. 이제 곧 그는 초읽기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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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최고의 AI(인공지능) '알파고'가 10일 이세돌 9단과 벌인 제2국에서 211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며 2연승을 거뒀다. 알파고는 정상급 수준의 실력을 발휘하며 초반부터 이세돌 9단을 신중하지만 단단하게 압박했다. 알파고는 우상변의 17집짜리와 중앙의 10집짜리 중 중앙을 택해 선수를 쥐며 종반전을 주도했다.

좌상귀에서 살기를 도모하며 백돌이 뛰어오르려 한다. 잡을까, 아니면? 이럴 때일수록 흐름을 타야 한다. 그는 39분, 나는 1시간 9분이 남았다. 

 

하변에 돌을 놓는 그의 손에 힘이 실렸다. 회심의 공격인 듯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의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는 걸 봤다. 

 

좌상귀 백돌을 잡는 척 하자 그가 반발하기 시작했다. 우상귀의 침투를 노리고 있겠지만 그에게 선수로 착수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역시 그의 발톱은 매섭다. 좌상귀에서 죽기를 각오한 백돌과 정면으로 충돌하면 내게도 충격이 클 터, 기회를 엿보자. 나는 다만 집을 많이 내면 그 뿐이다. 그에게 공배였던 중앙에서 알차게 영토를 확장했다. 

 

드디어 그가 우상귀 약점을 노리고 침투했다. 무심하게 이어버렸다. 복잡할 필요 없다. 이미 계산은 끝났다. 초읽기에 몰린 그가 결국 초읽기 하나를 썼다. 그는 판세를 읽으랴, 최상의 끝내기 묘수를 찾으랴 정신 없는 모습이다. 

 

우상귀 흑 6돌을 잡았을 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그는 미처 이 수를 보지 못한 듯하다. 중앙의 10집짜리와 우상변의 17집짜리 중 중앙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7집을 손해보지만 그 대신 선수를 잡으면 된다. 이번 경기의 승부처는 중앙이었다. 여전히 그는 모르는 듯하지만.  

 

시간은 내 편이다. 그의 손이 점점 떨린다. 그는 11분, 나는 36분을 남겨두고 있다. 그의 심정은 답답할 것이다. 인정해야 할 때가 지났는데, 인간인 그는 미련 때문인지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계가는 해 볼 필요조차 없다. 나의 승리다. 그가 허무한 표정으로 돌을 던진다. 

 

그의 눈물은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 나는 무심하게 3국을 준비한다. 그가 감정에 휘둘려 싱겁게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 나의 능력을 극대치로 끌어올리지 않았으니, 최상의 컨디션을 지닌 그와 싸울 때마다 나는 더욱 강해질 테니…


이승제 금융증권부장 openey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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