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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깊은 맛, ‘힙한’ 꽃할배 5형제 떴다

입력 2015-03-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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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나이 77.2세 할배들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 황혼의 로맨스, 섹시한 남자의 사랑, 연극계의 든든한 대선배 등 문화콘텐츠의 '힙한' 베테랑들의 습격이 심상치 않다.

 

 

요즘 TV를 보고 있자면 재밌는 생각이 든다. 손주뻘쯤 되는 10대 시청자가 평균 77.2세 할아버지들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에 열광하며 “오빠”를 외친다. 

 

그 오빠 중 한 사람은 황혼 로맨스를 다룬 영화의 주인공이다. 20, 30대 여자들은 죽어가는 아내를 건사하며 젊은 여인의 유혹에 흔들리는 스스로를 능숙하게도 추스르는 60대 중견 남자배우의 쓸쓸함에서 섹시함을 느낀다. 

 

‘여우에 홀렸다’는 우화 속 대사 한줄에 일필휘지로 희곡을 써내려간, 고희를 앞두고 있는 희곡작가에 감탄을 하기도 한다. 45년째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여든의 연출가는 베테랑 연기자 셋을 무대 위에 세웠다. 문화 콘텐츠에 이른바 ‘힙한’ 베테랑들의 습격이 심상치 않다. 


◇tvN ‘꽃보다 할배’, 영화 ‘장수상회’의 박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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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의 박근형은 영화 '장수상회'로 황혼의 로맨스를 선보인다.(사진제공=CJ E&M)

 

문화 콘텐츠의 대부분은 2030여성들이 주요 타깃이다. TV, 영화, 연극, 뮤지컬 등 어디에나 꽃미남 부대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들을 생각하면 ‘할배’들의 출연은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그런 중에 이순재, 박근형, 신구, 백일섭 등을 내세운 tvN ‘꽃보다 할배’(이하 꽃할배)는 시즌 3을 방송 중이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 등 스핀오프(한 콘텐츠의 상황에 기초해 새로운 이야기나 시리즈로 만들어지는 것)까지 만들어져 인기리에 방영됐다. 

 

그들 중 박근형은 어설프고 낯선 상황 속에서도 아내에 대한 사랑을 한껏 표현하는 로맨티스트였고 드라마 속에서는 젊은 후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존재감을 발휘하는 베테랑 배우다. ‘꽃할배’ 방영 중 박근형은 ‘황금의 제국’에서 젊은이들 폭주에 불을 붙이는 재벌가 총수로, ‘사랑해서 남주나’의 로맨티스트로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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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월 9일 개봉을 앞둔 영화 ‘장수상회’에서는 ‘꽃할배’의 스핀오프 시리즈 ‘꽃누나’ 윤여정과의 황혼 로맨스를 연기하기도 한다. 

 

 

‘장수상회’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형은 “사명감이 있었다. 나이 든 우리는 아직 자원이 풍부하다. 그걸 끝까지 이용하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게 아닐까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며 “‘꽃할배’처럼 영화에서도 사명감을 가졌다. 다른 나라는 노인과 젊은이가 어우러지는 영화가 많은데 한국은 없으니…. 이를 악물고 연극을 하던 어린시절로 돌아가 촬영에 임했다”고 털어놓는다.

◇영화 ‘화장’의 안성기와 임권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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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장'은 거장 임권택 감독과 베테랑 배우 안성기의 의기투합작이다.(사진제공=명필름)
“김훈 선생의 힘차고 박진감 넘치는 문체를 영상화하지 못했을 때 저 자신에 대한 열패감이 클 것이라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어요. 촬영을 마치고 편집하면서 관객에게 어떻게 닿을까가 가장 궁금해 떨리는 마음입니다. 어떤가요?” 


여전히 창작의욕이 불타오르고 관객과의 공감을 갈망하는 그는 한국나이로 80세를 맞은 대한민국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다. 김훈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화장’이 4월 9일 개봉한다. 

 

영화 ‘화장’은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김호정) 병수발에 헌신하면서도 젊은 여성 추 대리(김규리)에 이끌리는 남자 오 상무(안성기)의 깊은 감성을 따른다.

회사에서는 신망 받는 임원이고 집에서는 헌신적인 남편이지만 어쩔 수 없이 젊은 여성에 이끌리는 남자이기도 한 오 상무를 연기하는 이는 안성기다. 

 

‘편안한 옆집 아저씨’였던 배우 안성기는 영화 ‘화장’으로 ‘남자’가 됐다. 이렇게나 섹시한 중년남자라니… 영화를 본 젊은 여성관객들은 추 대리에 한껏 감정이입해 오 상무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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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장'의 임권택 감독(사진제공=명필름)

 

 

한껏 과장되고 촌스러워질 법한 이야기는 임권택 감독을 만나면서 함축된 언어와 감각적 영상으로 감정은 무르익고 작품은 완성도를 갖췄다. 잘 만들어진 단편영화 같은 영화 ‘화장’은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이다.

◇연극계의 기둥들, ‘여우인간’ 이강백 작가, ‘고도를 기다리며’ 임영웅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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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째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한 임영웅 연출가.(사진제공=산울림극단)

산울림소극장이 개관 30주년을 맞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념작으로 무대에 올렸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고고(에스트라공)와 디디(블라디미르)가 언제 어디에서 올지도 모르는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불거진 사회 부조리를 담고 있다.

 

연출은 45년 동안 이 연극을 지켜온 임영웅 연출가가 맡았다. 산울림극단의 대표이자 연극계 원로인 임영웅 연출가는 정동환, 한명구, 송영창 등 역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한 무대에 모았다.

27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있었던 연극 ‘여우인간’ 프레스 리허설 후 가진 기자회견은 살얼음판이었다.  

 

이강백 작가
연극 ‘여우인간’의 이강백 작가(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이 연극의 창작자인 이강백 작가는 “노래가 너무 엉성하다. (세월호의 아픔을 표현한) 애도의 노래도, 세월의 노래도 격분할 정도로 무성의하다. 곡이 2, 3일 전에 나와 연습량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안다. 하지만 관객에게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프로 같지 않다”고 일갈했다.  

 

이에 김광보 연출가는 “선생님의 말씀은 충언으로 받아들이겠다”며 “하지만 공연준비에 무성의하진 않았다. 연출 입장에서 두 노래가 관객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객관적으로 보이길 바랐다”고 연출의 변을 토로할 수 있었다.

이 작가와 연출, 두 사람의 격돌은 이상하게 현장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이강백은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제63회 서울특별시 연극 분야 문화상을 수상한 2014년까지 각종 희곡상을 휩쓴 희곡 대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이강백 선생의 일갈은 관객 누구나가 느낄 수 있는 부분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관객들을 상대로 연출의 의도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 꼬집을 수 있는 선배가 있어 후배는 자신의 생각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고 보다 연습에 박차를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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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잘린 월악산 여우에 빗댄 연극 '여우인간'(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연습기간 동안 조언을 주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강백 작가는 “연출도 작가다. 내가 희곡을 쓰고 있는데 누군가 들여다보며 이래라 저래라 하면 화가 나듯 연출도 마찬가지다. 연출의 의도를 이제 알았으니 함께 조율해 나가면 된다”고 답한다. 


우문현답이 아닐 수 없다. 제대로 된 선배의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다. TV, 영화, 연극 등 문화계 베테랑들의 습격이 의미심장하고 반가운 이유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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