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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울음소리 울려퍼지는 시골, 이젠 꿈 아니야"

[나이를 잊은 사람들] 이성균 백화마을 추진위원장

입력 2015-02-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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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중요한 일이 있잖아요. 그 중요한 일을 내가 직접 하는 거지요. 지금은 미래의 먹거리를 찾고 농촌 살리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충북 영동 백화마을, 경북 상주 자전거마을, 경남 거창 두레누리마을 등 전국 곳곳에 공동체마을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이성균(73) 백화마을 추진위원장의 말이다. 

 

신진자동차(현 한국GM) 노동조합 위원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사무차장, 근로복지공단 복지국장 등을 거치며 화려한 이력을 쌓은 그는 귀농귀촌 교육과 공동체 마을 조성에 앞장서며 '제 3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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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권익에 앞장섰던 ‘공원’

그가 촌장으로 있는 백화마을은 2008년부터 조성에 들어가 2012년 40여가구가 생기면서 농촌의 생태·공동체 마을로 자리잡았다. 이 마을의 집들은 에너지절감 효과가 큰 스트로베일(Strawbale) 하우스로 지어졌다. 현재 40가구에 13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백화마을에서는 이웃들이 힘을 모아 ‘같이그린 백화협동조합’을 설립해 10대들을 상대로 친환경 에너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후학교를 운영하며 마을이 자립할 수 있는 경제활동영역을 확장 중이다. 이러한 노력덕분에 백화마을은 지난해 충청북도로부터 그린 에너지 체험 특화마을로 지정되기도 했다.

촌장님으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리는 그의 행보는 언제나 독보적이었다. 이성균 위원장은 무엇이든 앞장서서 행동했다. 노동자를 위한 보호막이 존재하지 않았던 1970년대, 인천 신진자동차 공장에서 ‘공원(工員)’으로 일하던 그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노동조합을 직접 만들고 이끌었다.

이 노동조합은 당시 조합원이 6700명에 달할 정도로 큰 규모의 노조로 성장했고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고리대금업을 없앤 신용협동조합이나 생필품을 공동구매하는 소비조합, 무주택 조합원들이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주택사업까지 ‘노동의 대가를 사회에 덜 뺏기는’ 운동을 벌인 것. 현재 서울시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협동조합을 40년 전에 이미 성공시킨 셈이다. ‘협동조합 1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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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균 위원장이 백화마을에서 마을에서 가장 어린 아기를 안고 있다.

 


◇ “안전 제일” 군포시를 ‘청소년 교육 1번지’로

2003년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역본부장 자리에서 정년퇴임한 이성균 위원장은 경기 군포시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군포시 청소년 수련관장으로 부임한 그는 일본의 두 배가 넘는 한국의 산업재해율을 줄이려면 어린 시절부터 안전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위원장은 산업안전공단에 지원을 요청하고 유치원생,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또한 국민안전체험관을 건립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위기청소년들을 상담할 지원상담원양성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노력도 기울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군포시는 2004년 청소년교육특구로 지정되며 경기도민들에게 ‘청소년 교육 1번지’로 인정받고 있다.

“안전 문제는 청소년시기에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안전 관련 프로그램과 체험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안서를 만들고 열심히 알렸는데 아쉽게도 국민안전체험관은 계획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죠. 세월호 사건이나 안전 문제와 관련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가 그때부터라도 안전문제에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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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균 위원장이 백화마을 자신의 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미래 선진국의 청사진…백화마을 조성

그리고 그에게 ‘제3의 전성기’가 찾아온다. 바로 백화마을 조성이다. 그는 새얼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아침대화’ 프로그램에서 김영호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꼽은 21세기의 키워드에 큰 감명을 받았단다. 기후변화와 함께 환경과 에너지 산업이 발전할 것이란 말에 그는 에너지 부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에 나섰다. 여기에 선진국으로 가려면 농어촌이 살아야 한다는 한다는 생각이 더해져 귀농귀촌 운동의 하나인 백화마을이 건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백화마을 같은 공동체가 없어요. 에너지를 절약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이웃이 가족인 마을입니다. 아이 울음소리가 퍼지고 성공을 나누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하는 마을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 백화마을과 비슷한 경북 상주 자전거 마을은 입주자까지 모집이 이뤄졌고 차츰 확대해 나갈 계획이예요.”

멋진 주름이 매력적인 그에게 나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늘 이웃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살피고 행동하는데 나이는 상관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사람들한테 늘 내가 49살이라고 말해요. 원래는 39살이라고 했는데 70살이 넘고 나서는 49살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앞으로도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 마을을 확산하고 발전시키는데 제 남은 인생을 바칠 계획입니다."

 

글·사진 = 브릿지경제 권성중·남지현 기자 dioguinness@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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