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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엄용훈 대표 "전 빚쟁이입니다"

삼거리픽쳐스 엄용훈 대표
콘텐츠와 관객 소외된 주객전도의 영화배급에 반기를 들다

입력 2015-01-2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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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픽처스 엄용훈2

삼거리픽쳐스 엄용훈 대표

 

 

“리틀빅픽쳐스 대표 자리를 사임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만큼 저의 의지는 강력합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이대로 주저앉으면 또 다른 피해작들이 속출할 테고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아예 기획할 시도조차 못하게 되겠죠.”

최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하 개훔방)을 배급하는 과정에서 스크린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 수직계열화 등에 반기를 들고 고군분투 중인 삼거리픽쳐스 엄용훈 대표의 말에서는 결연함과 서글픔이 묻어났다.

리틀빅픽쳐스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영화사 청어람, 명필름, 주피터필름 등 10개 회사가 모여 만든 배급사다. 이 회사의 후속작 ‘내 심장을 쏴라’ 배급에 엄 대표의 싸움이 영향을 줄까 자진사퇴 의사를 밝힌 참이다.

“얼마나 피땀 흘려 만든 영화인데…하물며 ‘웰메이드’라는 평까지 듣는 영화가 소비자나 제작진을 위한 유통이 아닌 ‘유통을 위한 유통’ 시스템에 떠밀려 사장된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과 청와대 게시판에 ‘박근혜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현재의 사태를 알리는 장문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2014년 12월 31일 205개 스크린에서 735회 상영하던 ‘개훔방’은 개봉 10일만에 101개 스크린에서 178회 상영으로 줄었다. 교차 상영으로 스크린 수는 100개 안팎을 유지하고 있지만 상영회수가 200회 이하로 떨어진 건 개봉 8일만이었다. 교차 상영에서 가족영화 ‘개훔방’이 배분받은 시간대는 대부분 조조와 심야, 전체 좌석수로 환산한 점유율과 예매율이 낮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김혜자 선생님께서 정말 애를 많이 쓰셨어요.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뉴스 등에 출연해 영화를 알리고자 하셨죠.”

‘개훔방’으로 김혜자는 연기 인생 50년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겪고 있다. 김혜자 스스로의 표현대로 “나는 주연도 아니고 좀 마귀할멈처럼 나온다”는 영화 홍보를 위해 베테랑 배우가 발 벗고 뛴 이유는 “너무 좋은 영화라 한 사람이라도 더 보게 하고 싶어서”다.

영화산업에서 주객이 전도된 지는 이미 오래다. 멀티플렉스 등장과 제작·투자로 참여하던 대기업이 유통 및 극장 사업에 뛰어들면서 한국 영화계는 산업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스크린 수가 영화 흥행에 영향을 미치거나 투자사 혹은 배급사에 의해 좌우되면서 ‘콘텐츠가 아닌 유통을 위한 유통’이라는 부작용을 수반하기도 한다.

이들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1000만 관객 돌파 영화들이 생겨났지만 작은 영화들은 설 곳을 잃어가고 관객의 선택권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기에 이르렀다. 콘텐츠와 관객이 소외된 영화배급 시스템은 고질로 자리잡았다. 거대 배급사와 멀티플렉스를 등에 업고 스크린을 장악한 영화들만 흥행 영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관객의 준엄한 판단이라면 인정하고 자성해야 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한국 영화산업의 어두운 단면이 고스란히 입증된 사태죠.”

김수미, 진구, 임원희 등 연예인들과 네티즌들도 발 벗고 나섰다. SNS를 통해 ‘개훔방’을 단관(단체관람)할테니 누구든 오라는 글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 ‘개훔방’은 상업영화임에도 독립영화관에 걸려 있습니다. 너무 죄송하죠. 제가 ‘갑’에게 겪었던 횡포를 독립영화 제작자들에게 돌리고 있는 건 아닌지….”

결국 그는 말을 맺지 못했다. 엄 대표는 스스로를 ‘빚쟁이’라고 칭한다. 바바라 오코너의 원작 판권을 사기 위해 진 대출금보다 더 큰 빚은 마음의 빚이다.

“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단관 캠페인을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지만 너무 큰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개훔방’ 지지자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는 중에도 그의 휴대폰에는 끊임없이 메시지 수신음이 울려댄다. “힘 내”라고 “제발 지치지 말아달라”고.

글=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사진=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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