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 농수산물유통공사(at)와 산채시험장이 공동으로 해외 교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예상 밖으로 고들빼기 김치가 상위에 꼽혔다.
40cm까지 자라는 고들빼기는 파종 60일 정도에 꽃대가 올라오기 전에 수확해야 김치를 담글 수 있다. |
배추김치를 비롯해 떡, 한과 등 전통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닌 데다 오래전부터 세계화를 위해 공을 들여온 음식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해외에서 살면서 고국의 맛과 추억이 깃든 고들빼기 김치 맛을 평생 잊지 못하는 해외 교포들의 입맛이 고들빼기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겨우내 항아리 속에서 제대로 곰삭은 고들빼기 김치를 맛본 사람이라면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갖은 양념을 다해 담근 고들빼기 김치 맛은 묵은지만큼 깊고 묵직하다.
은은한 향은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고, 쓴 맛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게 느껴진다. 첫 맛은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갈증을 일으키는 패스트푸드와는 품성부터 다르다.
요즘에는 까맣게 잊혀졌지만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기 이전 시골에서는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면 묵정밭에서 고들빼기 캐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고들빼기는 온갖 풀이 뒤섞여 자라는 묵정밭이나 메마르고 거친 밭둑이나 제방에서 주로 자란다.
고들빼기는 평평하고 기름진 땅을 마다하고 거친 땅에서 자라지만 몇 년 지나면 다른 풀을 깡그리 말라죽게 하고, 그 자리를 독차지 하는 억센 잡초와도 다르다. 우리 산야에서 절로 자라는 고들빼기는 나고 자랄 곳을 가릴 줄 아는 염치가 있다.
고들빼기는 냉이나 씀바귀처럼 늦가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푸른 생명을 유지해 농민에게도 성가시지 않다. 농작물 수확이 끝난 다음 선선한 바람이 부는 늦가을에서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 고추와 콩 등 농작물의 갈무리가 끝난 휑한 빈 들녘을 외로이 지키며 겨울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농작물 수확이 끝난 뒤 자라는 ‘착한 성품’ 때문에 덤으로 채취할 수 있어 농민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고들빼기는 추위를 지혜롭게 피한다. 밤새 된서리가 내려도, 웬만한 추위에도 생장의 호흡을 멈추지 않는다. 생명력이 끈질긴 잔디조차 무서리가 내리면 하루아침에 누렇게 변하고 맥을 못 추지만 고들빼기는 흐트러짐 없이 고고한 자태를 유지한다. .
고들빼기는 한자리에 모여서 나고, 자란다. 사람처럼 어깨동무를 하거나 팔짱을 끼고 추위를 이기는 모습이다. 웬만한 식물은 잎을 떨군 채 마냥 봄을 기다리지만 한 겨울에도 생명의 호흡을 멈추지 않는다. 추운 겨울을 이겨 낸 인고의 산물이 고들빼기의 쓴 맛을 내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고들빼기를 ‘쓴나물’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 영양·약효
국화과 두해살이 풀인 고들빼기는 약 40cm 가량 자라며 흰색과 노란색의 꽃을 피운다. 고들빼기 김치에는 노란색 꽃을 피우는 고들빼기를 쓴다. |
고들빼기의 주 성분은 이눌린으로 매우 떫고 쓴맛이 난다. 칼륨, 칼슘, 인, 나틀뮴, 철 등 미네랄이 풍부해 임산부나 성장기 아이에게 좋다.
또 활성산소의 발생을 막아 항산화 작용을 하는 성분으로 알려진 베타카로틴도 풍부하다.
한방에서는 고들빼기를 '고채', '황과채', '활혈초' 등으로 부르며 해열, 소화불량, 폐렴, 간염, 타박상, 종기 등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본다.
한의사들은 '약식동원(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이라는 말이 고들빼기에 딱 어울린다고 말한다.
◇ 재배·수확
거친 땅에서 추운 겨울을 이겨낸 고들빼기의 인고가 고들빼기의 쓴맛을 내는지도 모른다. |
고들빼기는 키가 40㎝ 정도 자라는 국화과 두해살이 풀이다.
중부지방에서는 5~6월에 고들빼기에 솜털이 하얗게 필 무렵 종자를 채취해 7월 하순~8월 중순에 파종해 늦가을에 수확한다.
파종시에는 씨앗에 모래를 2~3배 섞어 뿌리고 차광망 등을 덮어 수분이 증발되지 않도록 한다. 파종 전에 뿌리가 깊게 내릴 수 있도록 깊이 갈이를 해준다.
낮이 길거나 기온이 높으면 꽃대가 나오므로 알맞게 가려준다. 제초 일손을 줄이려면 흑색비닐을 덮어 재배하는 것도 좋다. 파종 60일쯤 후에 수확하면 가장 먹기 좋다.
◇ 쌀쌀한 날에 먹는 알싸한 별미…고들빼기김치 담그는 법
고들빼기김치의 깊고 쌉싸름한 맛은 흰 쌀밥과 잘 어울린다. |
고들빼기김치는 얼음이 꽁꽁 얼고 함박눈이 내리는 한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다. 배추 김장김치에 싫증을 느낄 무렵 항아리 속에서 짭짤한 간이 알맞게 밴 고들빼기 김치는 겨우내 거칠어진 입맛을 되찾는 데 그만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얹어 먹으면 겨우내 까칠했던 입맛이 깨어난다. 구수한 흰 쌀밥과 약간 씁쓸한 맛이 나는 고들빼기김치는 찰떡궁합처럼 잘 어울린다. 이 때 얼음이 둥둥 뜬 시원한 김치 국물을 곁들이면 김치 국물의 시원하고 새콤한 맛과 고들빼기의 깊은 맛이 밥맛을 더한다.
1) 고들빼기를 다듬는다. 고들빼기는 다듬기가 만만치 않은데 우선 긴 뿌리를 3-4㎝ 크기로 잘라주고 뿌리와 줄기사이를 다듬은 후, 뿌리를 칼로 훑어준다.
2) 다음은 고들빼기에 물을 적당량을 부어준 후 소금약간을 뿌려주고 그위에 무거운 것을 눌러둔다. 이 상태로 3일 가량 놓아둔다.
3) 3일간 삭힌 고들빼기를 건져 물에 헹군 후 다시 적당한 물과 소금 한 줌을 뿌려준 후 무거운 것으로 눌러둔 후 다시 2~3일 놓아둔다. 두 차례 삭히는 기간은 쓴맛을 좋아하느냐, 삭힌 맛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1~2일 정도 더 삭히거나 덜 삭히면 된다.
4) 고춧가루, 양파, 마늘, 생강과 멸치액젓, 새우젓 등 갖은 양념과 찹쌀풀을 버무려 김치 양념을 만든다.
5) 삭힌 고들빼기를 헹군 후 물기를 빼고 김치양념과 버무린다.
6) 담근 김치를 김치 통에 담아 상온에서 이틀정도 익힌 후 김치 냉장고 등에 넣어 보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