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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 튼튼한데 허물지 마세요…한옥 리모델링 사례

다락방 못살리고 누수 '낭패'…하자보수 되는 곳에 의뢰를
저비용에 집 고치는 즐거움…오래된 창살 등 옛멋 그대로

입력 2014-11-0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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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정경
이순자씨는 부엌의 문을 없애 거실과 바로 통하는 열린 공간으로 변신시켰다.(사진=남지현 기자)

 

 

서울 성북구에는 1930년대 이후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 곳곳에 숨어있다. 작년 전수조사에 따르면1618채의 한옥이 자리잡고 있어 1010채가 있는 북촌에 비해서도 상당한 한옥이 분포해 있는 셈이다. 양옥이나 아파트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집을 만들었다 하면 모두 한옥이었다. 한옥은 한국 주거공간의 원형이었다. 

 

한옥전문 목수와 와공들이 지은 집들은 목구조가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뼈대를 살리면서 수리·보수할 수 있다면 새로 짓는 것보다 더 경제적이다. 성북구에서 만난 한옥들은 인테리어 업체를 통해서 혹은 자신의 손으로 고쳐져 새로워졌지만 단아하고 고유한 멋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순자-잘보존된나무틀
1940년대 집이 지어질 당시의 창틀을 그대로 보존한 모습.(사진=남지현 기자)

 

 

“업체에 맡길 땐 돈이 좀 더 들더라도 하자보수를 해주는 곳에 맡겨야 맘이 편해요.”

지난해 8월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한옥을 구입한 이순자씨는 인테리어 업체를 통해 리모델링을 했다가 큰 낭패를 보았다. 지인의 소개로 인테리어업자를 통해 내부 수리를 했지만 곳곳에 문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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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서 바라본 중간문의 옛 모습이다. 예전에는 파이프관이 지나가고 문이 달려있어 외관이 깔끔하지 않았다. (사진=이순자)

 

이순자-에프터마당
ㄷ자 구조인 이순자씨 집.(사진=남지현 기자)

 

가장 큰 문제는 천장에서 새는 비였다. ‘ㄷ’자 한옥에서 꺾이는 두 부분에 비가 뚝뚝 떨어졌던 것. 5일 동안 400만원을 주고 고용한 인부 두 명에게 기와 재보수를 요청했지만 이들을 데려왔던 인테리어업자는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그녀는 기와를 전문으로 다루는 업체를 인터넷에서 찾아 두 명에게 일당 130만원을 주고 다시 보수할 수 밖에 없었다.

이씨는 하자보수이행을 계약서에 명시하거나 규모가 있는 업체에 맡겨야 공사 후 돈이 두 번 드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옥은 부분적으로 보수할 때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보수비용을 포함하더라도 3.3㎡당 300만원 가량의 양옥 신축비보다 적은 예산에 자신만의 한옥을 꾸미는데 성공한 이씨에게도 아쉬운 점은 남았다. ‘욕심을 부리면 끝이 없다고 하지만 한번 고칠 때 확실히 했더라면 훨씬 마음이 편했을 거’라고.

“관리가 어렵다는 업체의 말 때문에 포기한 다락방과 지하실, 창문 등 원래 있던 구조가 아쉬워져요. 자기가 뭘 살리고 뭘 바꿀지 확실히 생각하고 고쳐 산다면 나중에 손이 두번 가지 않을 겁니다.”  

 

 

백영춘씨마루사진
백영춘씨는 1930년대에 지어진 한옥의 형태를 훼손하지 않고 마루에 장관을 까는 정도의 변화만 줬다.(사진=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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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춘씨의 집에는 창틀과 쪽마루에 오랜 한옥과 현재의 삶이 맞닿아 있다. 열린 문틈으로는 리모델링한 부엌의 내부가 보인다. (사진=남지현) 

 

“마루에 앉아 있으면 집이 제게 말을 겁니다. ‘여기 좀 고쳐달라’고.”

 

성북구 동소문동의 아담한 한옥에 사는 백영춘씨는 1년전 이 집과 사랑에 빠졌다. 주변시세보다 싼 값에 전세를 얻어, 1930년대에 지어졌을 낡은 한옥을 고쳐 살기로 하면서 그의 삶에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24㎡ 남짓한 ‘ㄱ’자 한옥은 백씨의 집이자 작업실이다. 오래된 창살이나 목구조 등 원래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며  500만원도 안되는 비용으로 한 달여간 스스로 집을 고쳐나갔다. 

물론 벽 공사와 하수도, 화장실과 부엌의 타일 등은 전문가의 손길을 거쳤다. 타일을 까는데 50만원, 단열재를 넣고 벽을 세워줄 목수를 3일 고용하는데 90만원, 페인트칠 하는데 30만원, 하수도 연결하는데 10만원(70만원 성북구청에서 지원) 등이 들었다. 

 

나머지는 모두 그의 몫. 지금까지도 구석구석 고쳐나가고 있다. 어디 하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마루에는 장판 40만원 어치를 사다 직접 깔았다. 친구와 함께 창고와 화장실 문짝, 부엌에 놓을 수납장을 만들면서 목공에 재능도 발견했다. 화장실 나무문짝만 해도 20만원에 사야 하지만 그는 단 1만5000원으로 을지로3가 목재소에서 나무를 사와 직접 만들어냈다.    

 

 

[After]백영춘씨의전경
ㄱ자 형태인 백영춘씨 집.(사진=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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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춘씨 한옥 구석구석에는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지인에게 구해온 돌연못(왼쪽위), 쪽마루 아래에 만든 신발장(왼쪽 아래), 직접 만든 화장실 창틀(오른쪽 위) 등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길고양이들은(오른쪽아래) 그의 집에 들르는 귀한 손님이다. (사진=남지현)

 

백영춘씨는 서까래와 도리가 그대로 드러난 천장을 원했고 천장을 판자로 막지 않았다. 대신 나무와 흙 사이에 흙이 자꾸 흘러내리는 것을 막으려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방법을 아는 이가 없었다. 고민 끝에 발견한 만병통치약이 있으니, 바로 실리콘이다. 실리콘은 접착력도 강하고 여러 색깔이 나와 있어 천장뿐 아니라 틈새가 벌어진 어디라도 쓸 수 있다고. 

 

매일 한옥을 보듬고 알아가는 그는 어느새 집과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조금 불편해도 이가 잘 맞지 않는 문,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 부엌은 옛 이야기와 그의 손길이 더해져 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해보면 별거 아닙니다. 천천히 하다 보니 나도 몰랐던 능력이 생기더라고요. 한옥에서 보낸 10개월은 내 인생의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남지현 기자 dioguinness@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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