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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 간 스타라고? 서태지의 ‘마지막 축제’는 오지 않았다

입력 2014-10-1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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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서태지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경기장에서 진행된 컴백 콘서트 ‘크리스말로윈’에서 열창하고 있다.(서태지컴퍼니제공)

 

“여러분이 좋아했던 90년대 스타들 많죠? 우리의 별이었던 스타들. 여러분의 인생도 빨리 저물어 가네요. 한물 간 별 볼일 없는 가수가 전해드립니다.”

가수 서태지가 ‘왕의 귀환’을 알리는 자리에서 자신을 ‘한물 간 스타’라고 지칭했다. 서태지가 누구인가. 대중문화의 황금기라고 지칭됐던 1990년대, ‘문화대통령’으로 칭송받았던 인물이다. ‘난 알아요’를 시작으로 ‘하여가’, ‘교실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컴백홈’까지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들은 당시 입시에 찌든 10대들의 해방구였다.

서태지가 데뷔한지도 어느덧 22년. 강산은 두 번 변했고 충성도 높은 그의 팬들은 어느덧 학부형이 됐다. 서태지 자신도 결혼해 한 아이의 아빠가 됐다. 그 과정 속, 한 여배우와 스캔들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18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서태지의 컴백콘서트 ‘크리스말로윈’은 마치 이러한 상황을 묘사한 듯 기묘한 형상들이 혼재된 무대였다. ‘크리스말로윈’이라는 이름 자체가 예수가 탄생한 크리스마스와 성인의 날 대축일인 고대 켈트인의 축제 삼하인에서 비롯된 ‘핼러윈데이’의 합성어다. ‘교실이데아’를 통해 기존의 규칙과 관습을 전복하라고 명했던 반항적 마인드와 여전히 팬들의 어린왕자로 남고 싶어하는 그의 내밀한 속내가 읽혀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서태지가 과거의 영화에서 멈췄다면 ‘크리스말로윈’은 그저 그런 90년대 스타의 ‘추억팔이’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서태지는 과거 사랑받았던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곡을 최소화했다. 대신 9집 신곡을 대거 소개하며 대중과 호흡하기보다 자신만의 음악을 할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TV 프로그램 ‘댄싱9’ 댄서들의 오마주 무대로 인트로를 시작한 서태지는 첫 곡 ‘모아이’부터 몽환적이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등장했다. 가수 아이유와 듀엣으로 진행된 ‘소격동’은 마치 영화 ‘건축학개론’을 연상케 하는 영상으로 한편의 동화같은 느낌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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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유의 듀엣무대 ‘소격동’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서태지컴퍼니제공)

‘버뮤다 트라이앵글’까지 부른 그는 팬들에게 “보고 싶었어요. 너무 오랜만이죠”라고 인사했다. 팬들과 격의 없이 반말로 대화했던 과거의 습관을 떠올리면 분명 달라진 모습을 인지할 수 있었다.

다음 곡인 ‘내 모든 것’은 서태지가 데뷔한지 22년만에 콘서트 무대에서 처음으로 부르는 곡이다. 소설가 정이현이 서태지의 노래에서 제목을 따 ‘안녕 내 모든 것’이라는 발간된 이 노래는 ‘내 모든 걸/당신께 말해주고 싶어/작은 마음 드리리다/나는 항상 그대의 마음 곁에 있어/소중한 건 너이기에’ 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마치 팬들을 향한 구애같은 노래에 공연장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고 서태지 역시 서서히 입과 몸이 풀리는 듯 ‘시대유감’으로 내달렸다. 서태지는 어색함에서 벗어난 듯 “5년 동안 몸 풀었지? 아니야? (그동안) 어디 다녔어, 너네?”라고 웃으며 말했다.

TV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수록된 ‘너에게’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원래 새우깡(드라마 속에서는 고깔콘이 등장)이었는데..”라며 “드라마를 보면서 여러분 생각이 많이 났다”고 추억을 곱씹었다.

9집 수록곡인 ‘숲속의 파이터’, ‘잃어버린’, ‘프리즌 브레이크,’ ‘나인티스 아이콘’ 등 신곡도 이날 처음으로 베일을 벗었다. 그는 신곡 ‘나인티스 아이콘’을 부를 때 “인연도 빠르고 인생도 빠른 것 같다”고 자조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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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집 신곡 발표 당시 등장한 대형 루돌프 썰매(서태지컴퍼니제공)

 

총 19곡으로 이뤄진 이날 무대에서 서태지는 발라드부터 하드록까지 자유롭게 완급을 조절했다. 압권은 스윙스, 바스코와 함께 한 ‘컴백홈’, ‘교실이데아’와 ‘하여가. 서태지는 “여기에서는 마음껏 욕을 해도 좋아요”라며 “1집 때부터 록, 힙합, 댄스 다 섞었는데 그런 것 좋아하는 사람들만 다 모인 거예요. 여기 친구들은 벌써 20년 넘게 음악에 편견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록과 힙합의 경계를 넘나든 바스코가 힙합신들 사이에서 비판받았던 부분과 록커 출신인 서태지 자신이 록계에서 혹평을 들었던 부분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날 공연의 음향은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역대 공연 중 가장 훌륭한 퀄리티를 뽐냈다. 총 17억원이 투입된 이날 음향은 세계적인 사운드 디자이너 폴 바우만이 담당했으며 스피커만 총 130대. 그라운드 서브우퍼가 36대에 달했다. ‘크리스말로윈’이라는 컨셉트에 맞게 무대 전면에 핼러윈의 심볼 ‘잭 오 랜턴’ 구조물이 설치됐고 공연 중간 대형 루돌프 썰매가 하늘을 날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분명 서태지가 스스로 말한대로 그는 요즘 10대들에게 ‘한물 간 가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날 주경기장에 모인 2만5000여명(주최 측 추산)의 팬들에게 서태지의 음악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의 ‘마지막 축제’는 아직 멀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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