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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도전 어느덧 10년차…간절하면 된다"

<인터뷰> 시인·역사동화작가 문영숙
치매 시어머니 간병기 올리며 글쓰기에 '푹'

입력 2014-10-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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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살이 넘어 등단한 시인이자 역사동화작가 문영숙(62)씨는 “무엇이든 열망하면 온다”고 믿는다.

 

 

2004년 가을, 용산구청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넋을 놓고 한참을 서있었다. 제40회 신동아 넌픽션 공모 우수상 당선을 알리는 전화였다. 그렇게 평범한 주부가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연 지 꼭 10년이다. 그 희열을 문영숙(62) 작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이야기를 탈고하고 출판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무엇이든 열망하면 와요. 갈급할 땐 꿈만 꾸는데 실천에 옮기면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오거든요. 신기한 인복이에요. 최근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소재로 소설을 썼는데 적합한 부부가 눈앞에 나타났어요. 무려 같은 동네 사람이었어요. 마법과도 같죠.”

작품의 소재는 그렇게 그녀가 알아봐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신문에서 본 고구려 사신도(무덤 속의 그림)와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검은 바다),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에네껜 아이들), 여행지에서 알게 된 최재형(독립운동가 최재형), 마음속으로 그리던 옛 친구(나의 왼손) 등 스쳐 지나는 것 어느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으면서 작품들이 탄생했다

“갈급함,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저를 작가로 만들었어요.”

단 한순간도 녹록치 않았다. 50살이 넘어서야 등단한 시인이자 역사동화작가 문영숙씨의 삶은 주림의 연속이었다.

딸의 출생신고를 4년이나 미룰 만큼 보수적이고 완고한 아버지와 소아마비 어머니 슬하에서 지게질이며 물질, 밭일까지 안해본 일이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실제나이 10살이 돼서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읍내 중학교 진학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에 고등공민학교(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에게 중학교 과정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도 장학생으로 겨우 졸업했다. 그녀 학력의 끝이다.

“50살 전까지 전 평범한 주부였어요. ‘18세기 황제’라 불릴 만큼 남편은 보수적이고 시어머니는 7년 동안 지독한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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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컴퓨터를 사주면서 얻은 무료 수강권으로 컴퓨터를 가장 먼저 배워 주부 문인들이 모인 ‘마로니에 샘가’(www.saemga.com)에 치매 간병기를 올리면서 글쓰기 재미에 푹 빠졌다.

 


옴짝달싹 못하다 놓여난 때가 47살이었다. 딸의 컴퓨터를 사주면서 얻은 무료 수강권으로 컴퓨터를 가장 먼저 배워 주부 문인들이 모인 ‘마로니에 샘가’(www.saemga.com)에 치매 간병기를 올리면서 글쓰기 재미에 푹 빠졌다.

보수적인 남편에게 붓글씨를 배운다고 둘러대고는 시를 배우고 썼다. 스스로를 ‘거짓말쟁이 아내’라고 지칭하는 문영숙 작가는 그렇게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시의 주제는 언제나 갈급함이었어요. 장미를 소재로 해도 철이 지나 시들어가는 장미에 대한 시였죠. 저의 치부를 보는 듯했어요.”

1년 동안 재밌던 시 쓰기가 재미없어져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1999년 우리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던 그녀는 2000년 월간문학에서 수필가로 등단했다.

시를 쓰고 수필을 써도 갈증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래서 꼭 50살이 되던 해에 도둑 공부를 시작했다. 남편도 자식들도 모르게 고입자격 검정고시를 독학해 6개월만에 합격했다. 그렇게 그녀는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04학번 학생이 됐다.

“30년을 넘게 당시 유행하던 월남치마를 입고 캠퍼스에 앉아있는 꿈을 수도 없이 꿨어요. 대학에 입학하고 그 꿈을 꾸지 않게 됐죠.”

대학입학 후 고구려 벽화를 소재로 한 동화 ‘무덤 속의 그림’을 시작으로 열심히도 글을 썼다. 2004년 중편동화 ‘엄마의 날개’로 제2회 푸른문학상을, 2005년 ‘무덤 속의 그림’으로 제6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10년 남짓 그녀는 20~30년된 작가처럼 치열하게 작품을 쏟아냈다. 2014년에 출간한 ‘나의 왼손’ ‘독립운동가 최재형’ ‘벽란도의 비밀청자’를 포함해 장편만 15권이다.

“18세기 황제 남편도 개화기에 들어섰어요.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끝없이 도전하면 삶이 풍요로워져요. 앞으로도 치열하게 쓸 거예요. 죽는 날까지.”

주림과 고난 속에서 살던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다.

글·사진=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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