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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혁 "밝은 노래는 못만들어…개인적인 이야기 담았죠"

입력 2014-09-2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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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3집 앨범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이장혁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작업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

 

 

 

2000년대 초반 새로운 밀레니엄이 반드시 희망을 동반하지는 않는다는 서글픈 사실을 깨달은 청년들의 마음을 후빈 노래가 하나 있다.

    
'내가 알던 형들은 하나 둘 날개를 접고 아니라던 곳으로 조금씩 스며들었지'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 '스무살'은 당시 자취방 구석 방황하는 젊음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했다.
    
노래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안으로 울던' 청년들은 이제 어딘가로 스몄지만, 그 노래의 주인공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멜로디와 가사로 자신의 내면을 탐험하고 있다.
    
당시 인디신(scene) 최고 히트곡의 하나였던 '스무살'이 담긴 1집(2004) 발표 4년 만에 2집(2008)을 발매하고, 그로부터 다시 6년 만에 3집을 낸 싱어송라이터 이장혁(42)을 강남구 논현동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개성있는 음악 색깔을 지닌 싱어송라이터들이 때때로 오랜 공백기를 갖긴 하지만 10년간 겨우 석 장이다. 이런 흐름이면 4집은 2022년에나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팬에게는 '고문' 같은 기다림이다. 
   
"원래는 2년 전에 내려고 했어요. 보컬을 빼고 녹음은 모두 끝난 상태였는데 작업의 맥이 끊겼죠. 녹음 여건이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일도 바쁘고 작업 환경도 별로고요. 그러다가 올해 6~7월에 모두 마무리했어요."
    
그는 "이번에 앨범을 내게 돼서 다행스러운 면이 많다"며 "예전에 냈다면 앨범의 질도 떨어졌을 것 같고, 멜로디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고 덤덤하게 설명했다.
    
지난 18일 발매된 3집은 열두 곡을 꽉 채워넣었다. 싱글을 지속적으로 내도 좋지 않았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앨범을 듣고 자란 세대여서인지 싱글보다는 정규 앨범을 쌓아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좀 고리타분하다(웃음)"라고 소신을 밝혔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감성을 담고 있다. '녹슨 칼집 걸어간다/ 당신들은 비웃는다'라고 조소하는 '칼집'으로 앨범의 문을 연 뒤 '그대 떠나 버리고/ 나는 홀로 남겨져/ 이전보다 더 차갑게 식어만 가네'라고 울부짖는 '에스키모'로 이어진다. 
    
"'칼집'은 제 몸뚱이를 의미해요. 나이가 들면서 안으로 삭혀야 하는 화나 날카로움이 있죠. 그런 부분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나이든 제 모습을 녹슨 칼집으로 비유했어요."
    
타이틀곡 '불면'은 불안한 느낌의 포크 스타일 기타 리듬과 우울하고 씁쓸한 이장혁 특유의 보컬이 어우러졌다. 그는 노래에서 '이름 없는 어느 미친 패잔병처럼/ 터벅터벅 어둔 거리를 걷네'라고 자책한다. 
    
그는 '불면'에 대해 "멜로디도 좋고 사운드 편곡도 잘 된 것 같다"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수록곡 가운데 '노인'의 가사가 인상적이다. '날아오는 총탄들을 뚫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여기까지 용케 잘도 살아남았는데/ 고작 저 소낙비가 나는 너무 너무도 두렵구나'라고 탄식하는 가사가 서글픈 삶의 한 장면 같다.
    
"예전에 일로 청량리에 갔을 때 이른 봄비를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노인이 서 계셨어요. 얇은 옷차림으로 몹시 떨면서 거리를 지켜보고 계셨죠. 옆에서 그분의 눈을 오래 바라봤는데 여러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걸 메모해뒀다가 2~3년 지나 노래로 만들어봤죠."
    
'불면'을 비롯해 대부분 노래가 빠져나갈 구멍 없이 우울하다. 1집 수록곡의 제목이기도 한 '자폐'가 그를 상징하는 단어일 정도로 어두운 내면에 침잠하는 음악 스타일이야 익히 알려졌지만 1, 2집처럼 중간에 '쉬어가는' 부드러운 트랙도 찾기 어렵다.
    
"밝은 노래도 몇 번 만들려 노력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웃음) 어두운 노래는 쉽게 만드는 편이에요. 쓱쓱 만들어져요. 그 재능에 충실하다 보니 그런 어두운 쪽으로 많이 간 것 같아요."
    
그는 앨범을 꿰뚫는 콘셉트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그림을 잡지는 않았다. 내게 앨범은 그동안 만든 곡들을 정리해서 배치하는 작업이다"라며 "이번에도 앨범의 타이틀을 달지 않았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1집에는 사운드를 샘플링하거나 전자 악기를 쓴 곡이 많았고, 2집은 어쿠스틱하게 갔는데 이번 앨범은 이전 두 앨범의 중간 성격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의 앨범에 대한 평가를 보면 '가사가 시 같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크다는 것.
   
"사실 가사는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받아들이는 분들은 자기화해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그것까지는 제가 '책임'질 수는 없죠.(웃음) 해석되는 방식을 그리 신경 쓰는 편은 아닌데 가끔 보면 재미있고 신기하기는 해요. 하지만 이별이나 성장의 아픔은 누구나 공통적인 경험이니까, 그런 부분이 영향을 줄 수도 있겠죠."
    
실제로 마주한 그의 모습은 그동안 음악을 토대로 예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음악보다 훨씬 유쾌하고 논리적이다.
    
"제 노래의 감성이 저의 전부는 아니에요. 다양한 면의 일부일 뿐이죠. 저도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것 좋아합니다. 그저 일기에 담을 만한 부분을 조금 풀어서 음악으로 보여 드릴 뿐이죠. 다만 어두운 이미지는 이제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어둡지만은 않아요'라고 말하면 괜히 이미지 개선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서….(웃음)"
    
수집가들이 충분히 노릴만한 1집을 요즘 유행하는 LP로 재발매하는 게 어떻겠냐 물으니 "애초부터 아날로그로 작업하면 몰라도 디지털 작업물을 일부러 LP로 발매하는 것은 그냥 돈이 목적인 것 같아서 별로다"라고 답했다.
    
또 음악을 알리려면 방송 활동도 필요하지 않겠냐 묻자 "가벼운 토크 정도는 괜찮겠지만 예능은 정말 못한다. 프로그램 분위기를 깨고 싶지도 않고, 나는 노래만 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무난해 보이는 표정 속에 문득 굳은 고집이 느껴졌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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